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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Sep 19. 2022

내가 사랑하던 내 모습을 버리는 방법

'번아웃' 극복기


 1.


 뜨거운 열기만이 가득했던 시절에는, 많은 눈물과 고통이 있었음에도 그것마저도 아름답던 시간이었다. 어리숙하다는 이유로 당연한 실수가 만연했던 날들, 그 공기층은 어색한 웃음과 민망한 기분과 실수를 만회하고 말겠다는 어설픈 포부로 이글거렸다. 그래서 그토록 완벽에 목이 말랐던 것일까. 더 잘해야지, 더 열심히 해야지, 더 완벽해야지, 주문 외우던 것들이 나의 계절에 열기를 더했다. 평생 영원할 것만 같던 나의 계절, 여름, 그리고 지평선에 아름답게 반짝이는 나의 꿈까지.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 영화의 오케스트라 음악처럼, 아주 급박하게, 어떤 목표를 향해 내달렸다.


 열정이 죽어 없어지는 일만큼은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두 손을 모아 빌었다. 밤낮으로 열정의 기록들을 남기면서,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어른을 경계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 되자고, 절대 안정을 추구하지 말자고 말이다. 그땐 그것만이 인생의 진리고 정답인 줄로만 알았다. 그게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채찍을 쥐고 자해를 하곤 했다. 더 성실해야지, 이제는 실수하면 안 되지, 요령을 부리면 안 돼. 스스로 만든 금기사항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한 줄, 한 줄씩 채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던 지평선의 반짝이는 꿈은, 허무하게 사라졌다. 영원히 타오르는 여름이 없듯, 나의 세계에도 계절이 바뀌기 시작했다. 공기층에 숨죽이고 있던 열정의 미소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지평선의 반짝이는 윤슬도, 뜨겁게 타오르던 태양도, 갈증 심한 마음까지도. 가을에 몸살을 앓고, 이윽고 겨울이란 계절을 맞닥뜨렸을 때 나는 비로소 완벽한 좌절에 접어들었다. 멈춘 심장을 되살리기 위한 처절한 몸짓은, 힘들지만 괜찮아지겠지, 나아지겠지, 극복하겠지, 희망찬 말들로 채찍을 가하던 나는 이제 완전히 죽어버렸음을 실감했다.


 더는 열정에 타오르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무리 부딪히고 싸워봐도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기만 했다. 어쩌면 내가 세운 목표나 기준이 너무 높은 곳에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럼 조금 더 기준을 낮춰볼까. 그 기준이 낮아질수록, 나에 대한 기대나 자존감도 한없이 고꾸라졌다. 나는 이 벽을 넘을 수 없다, 내 능력은 여기까지다, 더 이상 나아갈 힘이 없다. 몸살을 앓는 가을 내내 눈물만 흘리다, 겨울의 한기에 눈물조차 얼어붙고 말았다.


 마음에 냉기만이 가득 찬 한 겨울이 되었을 때, 내 인생에 봄날은 없다고 느꼈다.


 

 2.


 뜨거운 햇살이 크리스털 모양으로 쏟아져 내리는 여름날, 뙤약볕 아래 가만히 선채로 구슬땀만 뚝뚝 흘려냈다. 고개를 숙인 채, 머리칼 끝에 맺혀 떨어지는 땀방울을 응시했다.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나에게 주어진 일을 했다. 사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뛰어다니지 않아도 됐는데, 그런 것쯤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일만 하다 죽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의미 없던 날들. 얼어붙은 가슴과 다시 뛰지 않는 열정은,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내 두 눈에는 또렷이 보였다. 말로는 다 할 수 없고, 눈앞에 형용할 수조차 없는, 설명할 길 없는 참담한 감정을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일이란,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죽었으면 했다. 차라리, 의미 없이 일만 하다 죽는 편이 더 고결한 편이겠다고.


 그 뒤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몸살을 앓았는지 모르겠다. 몸도 마음도 지치자, 이제는 밤새 우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죽지 못해 사는 게 이런 걸까. 죽을 용기는 나지 않으면서, 몸은 있는 대로 혹사시키면서, 괜찮다는 위로는 또 가슴에 부서지지도 못했다. 막막한 마음은 어쩔 줄 몰라 울었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눈물이 말라 울음조차 나오지 않을 때는, 멍하니 벽을 바라보기도 했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렇게 의미 없는 시간을 또 보내고 있었다.


 어쩌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마음조차 욕심이 아닐까,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바라 왔던가, 어쩌면 내가 비정상이었던 건 아닐까. 그 가운데 나에 대한 자존감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삶에 대한 회의가 밀려들었다.


 '사람이 태어나 무언가를 이루며 살지 않는다면, 그건 의미 있는 삶일까?'

 '사람들은 대체 무슨 동력으로 살아갈까?'

 '왜 우리는 살아야만 할까?'


 질문이 덧대여질수록 짙은 어둠의 늪으로 빠지는 나를 구할 수 없었다. 



3.


 얼마나 나 자신을 내려놓았던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놓은 채로 살았다. 그저 주어진 일만 마무리하고, 욕심을 내서 무언가를 더 하려고 하지 않았다. 퇴근 후 집에 가면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어떤 날은 우울했고, 또 어떤 날은 슬펐고, 또 어떤 날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게임을 하기도 했고, 영상을 보기도 했다. 그럴수록 점점 사람을 안 만나게 됐고, 나만의 세상에 고립되기 시작했다. 그토록 좋아하는 글을 쓸 때도, 세상의 모든 우울을 가져온 것마냥 눈물만 흘렸다. 세상 사는 일이 재미가 없었고, 지독하게 우울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몇 달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내 마음속에는 새로운 마음 하나가 싹텄다. 예전만큼은 뜨겁지 않지만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그리고 한편으로는 열심히 살면서 받았던 상처를 또다시 받고 싶지 않다는 다짐이었다. 이상적인 꿈과 목표가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현실적인 부분들을 다져가면서,
모든 사람에게 나의 꿈을 이야기하지 않고 함구하면서,
나 혼자서 일궈나가는 은밀한 꿈을 만들어가는 게 어떨까? 

그럼 실수하지 않아도 비난하는 이가 없고,
느리지만 천천히 무언가를 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계획을 세우는 것도 좋지만, 계획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말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삼켜져서, 진정한 내 삶을 잃어버리지 말자고. 미래의 내 모습을 사랑하는 것만큼, 현재의 나도 사랑해주자고. 가끔 느긋하게 게임을 하면 어떻고, 누워서 게으르게 영상을 보면 어떤가. 열심히 달렸던 만큼, 그동안 이뤄왔던 것만큼 다시 또 무언가를 하기 위해 뛰어다닐 텐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몇 달의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느낀 것은 그런 것이었다.


 '내가 게으르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열심히 달려오기만 한 인생, 너무 지쳐 모든 걸 내던지고 싶고 버리고 싶다면, 내가 지금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떠올려보자. 나는 과연 '나'를 사랑하고 있나, '일'을 사랑하고 있나. '나'를 사랑하는 일이란 무엇일까. '일'이 삶의 우선순위가 되면, 유한한 심신의 체력을 가진 '나'는 언젠가 닳아져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때가 온다. 휴식이라는 것은, 단순히 몸만 쉬는 것이 아니다. 채찍을 쥐고 수없이 내 마음과 영혼에게 희생을 강요한 순간에도, 그 마음을 풀고 위로해줄 시간이 필요하다.


 열정을 가득 품고 살아가던 지난날 나의 계절은, 이미 지난 시절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만큼 체력과 마음이 풍부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과거의 나를 생각하며, 끊임없이 채찍질을 해야 할까? 아니다. 지금 맞닥뜨린 나의 계절을 향유하고, 누리는 것이다. 내 체력이 닿을 수 있는 만큼, 내 행복을 채우고 만들어 나가는 일. '번아웃'이나 '우울감'이 밀려드는 새벽, 늪에 빠져들면서도 지독하게 생각해야 할 건, 정말 나 자신이 행복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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