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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Dec 26. 2022

특별한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어째서 그런 감정이 일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슬픈 영화라 할지라도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던 내가, 추운 겨울밤 침잠해지는 마음결에 눈물을 훔쳐내게 될 줄은. 나의 울음을 훔쳐낸 한 겨울의 눈보라는 마침내 내 마음에 슬픔을 적시었다고 무척이나 좋아하였다. 차디찬 겨울바람에 나부끼는 눈발과 아무렇게나 흩어져 내려도 차곡차곡 제 몸을 눈발 위에 내려 앉히는, 어떠한 새 눈송이의 모습에서 반짝이는 미소가 일었다. 모두들 내 눈물과 슬픔에 찬양하였다. 마치 나의 눈물을 수년간 기다려왔다는 듯이.

 적막하고도 고요한 겨울의 풍경 사이로 가슴마저 공허해졌다. 그 헛헛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하염없이 눈발을 바라보다가,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행복은 늘 우리 곁에 있다고 했는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내 곁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가슴 벅찬 행복 같은 것이나, 두려움에 떠는 불행같은 것들. 오히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서 더 서글퍼지는 겨울밤에, 나는 마침내 눈물을 흘렸다.

 한번 터지기 시작한 감정은 걷잡을 수 없었다.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감정은 그저, '그냥'이라는 말로밖에 설명되지 못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텅 빈 마음에 새어든 겨울바람이, 온몸과 마음을 시리게 만들어 놓았다. 어쩌면 긴 시간, 이 감정을 억눌러왔던 건 아닐까. 모든 것들이 기다렸다는 것처럼 날 에워싸고 있으니까. 왠지 울어도 될 것만 같았다.

 사랑하는 이의 품에 안겨 한참을 엉엉 울다, 퉁퉁 부은 얼굴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사랑스러운 얼굴로 다시 내 머리를 끌어안았다. 얼마나 기댈 곳이 없었으면, 나에게 와서 우느냐고 했다. 그냥, 아니, 그냥. 나는 그냥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데도, 그는 기꺼이 자신의 품을 내어주었다. 왜 우느냐고, 울지 마라고, 웃어야 한다고, 그런 강요나 억지 같은 위로 없이도 나는 충분히 그에게 내 온 눈물을 쏟아낼 수 있었다.

 한참을 울고 난 이후에 나는 따뜻하고 포근한 그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아주 오래, 그리고 푹 잠에 들었다. 그의 품에서는 시커먼 악몽이나 무거운 시련들도, 그저 내일을 위한 하나의 과정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닥친 시련들이 마치 내 인생을 망가뜨리고 망치기 위해 내려진 것이 아니라, 내가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일종의 훈련 같은 시간처럼 말이다. 늘 부정적이고 어둠에만 휩싸여 있는던 내게, 그는 늘 따뜻한 햇살처럼 긍정적인 응원들을 해주었다.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부담스러운 응원도, 그가 하면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생겼다.

 넌 남들과 다르고, 특별해.
 특별한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그건 네 인생을 아름답게 가꿔나가는 일이야.




 아침에 눈을 뜨자,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어 있었다. 그의 품에서 통잠에 들었다 깬 나는, 가뿐한 마음으로 커튼을 재꼈다. 밤새 나의 울음에 머리칼을 쓸어내려주던 사람은 이부자리에 없었다. 나는 포근해진 기분으로 컵에 물을 따랐다. 이제 마음은 이전의 밤들과 달리 따뜻한 공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렇게 또 며칠은 잠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고 포근한 햇살을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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