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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an 15. 2024

새해


 빛바랜 어느 겨울날의 나는 청바지에 알록달록한 체크셔츠를 걸친 채, 보풀 일어난 카디건을 끌어안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밝게 웃으며 다가오는 동성 친구였을 수도 있고, 따뜻한 품으로 나를 끌어안는 매력적인 이성이었을 수도 있다. 해를 넘기는, 수많은 연말연시의 날들엔 늘 누군가가 함께 있었다. 해를 바라보며, 지나갈 해에 대한 반성과 맞이할 해에 대한 기대로 잔뜩 부풀어서는.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나는 늘 누군가를 기다렸지만, 그 누군가는 꼭 '사람'만은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성큼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세상에서는 같은 뜻으로 설명되지만 나에게는 늘 새로운 느낌이었다. 이제 내가 더는 보풀이 일어난 싸구려 카디건을 입지 않게 되어버린 것처럼, 품이 넉넉하고 따뜻한 코트를 입을 수 있게 되어버린 것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의 의미도 조금씩 달라져 갔다. 어쩌면 기회였을 수도 있고, 푸릇푸릇한 도전이었을 수도 있고, 또 어쩌면 포근한 안정감 같은 것이었을 다양한 의미들에 관하여.

 나이가 들면서 취향은 바래졌고, 성격은 물러졌다. 세상이 설명하는 '기회', '도전', '안정감' 따위의 명칭들은, 어느 나이대였느냐에 따라 달리 느껴졌다. 한때 나에게 '안정감'이란 '게으름'의 다른 말 같았는데, 지금 나에게 '안정감'은 '도약을 위한 발판'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넘어가는 한 해를 보며 나이 듦을 애석하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해의 반복 속에 그런 벅찬 감정 따위도 잊혔다. 새해가 특별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1년 중 딱 한 번 돌아오는, 나의 지난날들을 진심으로 돌아보게 하고 마음을 좀 더 단단하게 다지게 해주는 단 한 번의 시기이기 때문이었다.

 젊음을 품고 있다는 미명 아래 수없이 많은 순간이 죽어간 청춘은 이제 지난 영광이 되어 버렸다. 다시 되돌아갈 수도 없고, 실수를 바로 잡을 수도 없는 아련한 추억의 일부분으로. 20대 시절의 나는, 그나마 더 어린 시절에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해 늘 괴로워하곤 했다. '그때 더 열심히 할걸, 그때 더 잘할걸….' 자책은 내 마음속에 지옥도를 그렸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바다에 영혼을 들이 민 기분이 들었다.

 실수를 다시 만회할 수 있는 기회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꼭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야만 완벽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내가 만약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못했다면, 그 순간 선택을 잘못한 어리석은 나를 비난할 게 아니라, 그때 내 선택을 존중하면서 오늘날 내가 어떻게 걸어 나가면 될지를 고민하면 되었다. 이미 실수는 엎질러졌고, 내가 그것을 주워 담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면 말이다. 순간의 선택들은 늘 그런 식이 었다. 어중간한 실수는 없었다. 실패는 실패였다.

 나는 실패를 온전히 인정할 수 없어서, 그동안 내가 노력한 것들을 늘어놓으며 정당화하려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살아온 청춘의 전부가 다 실패했다고 느껴져서, 그동안 잘못 살아왔던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완벽해지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실패를 인정할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난 열심히 살았는데, 마치 세상이 날 위해 굴러가지 않았다고 말하는 듯이, 그런 판단과 생각들이 되려 나를 더 어리숙한 청춘으로 남게 만들었다.

 걱정과 고민은 비슷해 보이지만 아주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이제 서서히 지혜롭게 고민하는 법을 터득하고 배워 나갔다. 그건 내 선택에 대한 책임감이자, 삶을 진취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를 길러주었다. 지혜란 특별한 게 아니었다. 내 앞에 엎질러진 실수를 주워 담을 생각이 아닌, 어떻게 닦아내느냐에 대한 고민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놓쳐서 후회를 할 일이 생겼다면, 그걸 오늘이라도 바로 잡으면 되는 것이었다. 운동을 못해서 체력이 약해졌다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운동하지 못한 것에 후회한다고 해서 오늘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당장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운동장을 나가면 됐다. 그런 시도라면 작심삼일이라도 좋다.

 그러니 생각해 보면, 새해에 꼭 특별히 버킷리스트를 작성한다거나, 무언가 새로운 걸 해보려 시도하지 않아도 됐다. 과거에 내가 하지 못했던 것, 여러 핑계로 하지 않았던 것들을 천천히 실천해 가는 것만으로도 내일은 달라질 여지가 있었으니까. 이 모든 것들은 과거의 내가 부지런하지 못해서 벌어진 것들, 실패에 젖어 현실에 안주해 버리려는 것들에 대한 반성이자 책임감이었다. 실패를 온전히 인정하는 순간 나는 달라질 수 있었다.

  '그래,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반성은 또 다른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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