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만 남은 언론고시를 때려치우겠다고 첫 출판을 감행했던 날, 나는 완벽하게 꿈에 대한 미련을 떨쳐냈다고 자부했다. 3년간 그득하게 썼던 일기에는 온갖 복잡한 감정들이 난무했다. 말로 내뱉자면 수일은 족히 걸릴, 영양가 없는 울분의 조각들. 어쩌면 출판이라는 목표를 들어, 포기를 대변할 멋들어진 명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마침내 출판을 했고, 꿈을 이뤄낸 사람처럼 짜릿한 해방감을 느꼈다. 아주 멋진 대리만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꿈을 완벽하게 건조했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틀렸다. 확신을 가지고 꿈을 내려놓았건만, 생각보다 나는 한때 내 가슴에 뜨겁게 품었던 꿈을 개운하게 내려놓지 못했다. 나는 '마침내' 꿈을 내려놓았고, '마침내' 길을 잃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나는 더욱더 불안정했다. 내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내가 새롭게 가려는 이 길을 계속 걸어가도 되는지, 한참 또 걸어가다 그만두게 되는 것은 아닌지. 나의 목표는 어딘가 불안했고, 고심 끝에 정했던 얄팍한 목표는 금세 쓰러지기 일쑤였다. 나는 점점 나약한 나 자신에게 지쳐갔다. 어떻게 하면 강인하게 버텨내는 지도 잊어버렸다. 예전에는 너무 멀어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꿈을 향해 어쩌면 그렇게도 굳세게 걸어 나갈 수 있었을까? 과거의 나에게 되묻고도 싶었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내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상처도 많이 받았고, 또 죽을 만큼 열심히 살았지만, 또는 그 시절이 그립기도 했다. 어쩌면 후회, 또는 어쩌면 외로운 감정들이 온 마음을 휘감고 있는 중에도 시간은 부지런히 흘러갔다. 하루가 쌓여 한 해가 되었고, 한 해가 쌓여 한 시절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상황과 사람에 이리저리 치이면서 점점 단단해져 갔다. 감정적으로 행동하던 어리숙한 상황들에도 익숙해져, 이제는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현실적이며 계산적이게 되었다. 언젠가는 그렇게 변해져 가는 내 모습에 서글프기도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 안정적이게 느껴지기도 했다.
늦은 밤 고속도로 위 차량 불빛을 향해 내달리는 고라니처럼, 꿈을 좇는 그 시절의 내 모습은 어쩌면 욕심이라는 본능에 충실했던 건 아닐까. 욕심이 단단한 집착으로 변해갈수록 나는 점점 더 피폐해져 갔다. 꿈에게 치여 온몸과 마음이 병드는 대형사고를 면하기 위해 꿈을 내려놓고, 조금씩 내가 해야 할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불안해하면서도 나는 꾸준히 한 분야의 일을 파고들었다.
'꼭 PD가 되지 않아도 영상은 만들 수 있잖아! 내가 원하는 영상을 스스로 만드는 거야!'
그렇게 시작한 것이 유튜브 콘텐츠 크리에이터였고, 어떤 회사의 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기획하다 보니 어느덧 관련 분야 경력이 7년 정도 다다르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언론사 PD 채용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력서를 넣기도 했다. 마음이 동할 때는 언론고시를 다시 준비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나에게 언론인에 대한 꿈은 간절했으니까. 하지만 다시 언론고시를 준비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더 집요하게 나에 대해 파고들었다.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좋아하는 일을 집중해서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도 수없이 갈등하고 괴로워하면서 한 분야의 일을 쌓아왔다. 부족한 것과 배울 수 있는 것은 닥치는 대로 배우고, 내 나름대로의 스킬을 쌓았다. 꼭 영상편집만 배운 것은 아니었다. 기획과 디자인, 틈틈이 출판에 대한 공부도 놓치지 않았다. 더 나아가 내 노년에 대한, 미래에 대한 대책까지 세워나갔다. 언론고시를 포기한 이후 내 삶의 시계는 바삐 돌아갔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괴롭지만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들을 쌓였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고, 대기업 홍보 관련 직무로 입사하고 나자 나는 그동안 흔들리며 쌓아온 나의 커리어에 벅찬 보람과 감동을 느꼈다. 결론적으로는 내가 하는 직무와 전혀 연관이 없겠다고 생각한 일들도, 현재의 나에게는 필요한 능력이 되었다. 그렇게 보면 세상은 어쩌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을 누가 인정해 줄까 했는데,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니 결국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 되었다.
인생에는 확실히 정답 같은 건 없었다. 굳이 정답을 찾는다면, 내가 가는 이 길이 바로 정답이었다. 언젠가의 나는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낀 적이 있었다. 열심히 산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도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내가 열망하던 꿈이 더 멀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그럼에도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PD든, 언론인이든, 작가든 그런 '단어'로 정해진 형태의 꿈은 길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그에 따른 직업도 변하기 마련이었다. 어떤 명사로 명명되는 직업을 가진 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 자체'인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것이야 말로 대체불가능한,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답은 바로 나의 인생을 사는 것이었다.
'나의 인생을 사는 것'이 어찌 보면 되게 이상적인 말처럼 들릴 수 있다. 보통은 '내 인생을 살아라'는 말을 들으면, 꼭 날 위한 여행을 떠난다거나 취미생활을 해야 하는 것처럼 듣곤 한다. 하지만 단순히 '내 인생'을 사는 것은 그런 휴식을 취하는 것만은 아니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내가 잘하거나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씩 조각을 모아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비로소 '내 인생'을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에서 '잘하는 일'로 변하는 중이고, 나는 앞으로 이 일을 더 사랑하고 잘하기 위해서 탐구하고 공부하며 시간들을 보낼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괴롭게 할 때는 인생이 고달프고 외롭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오히려 선택과 집중을 확실하게 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 예전의 나는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두고 어떤 것을 해야 할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삶도 인생도 선택도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오늘 나의 선택이, 훗날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될 거라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 나는 오늘도 부지런히 내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차분히 배워나가야겠다.
그런 의미로, 나는 오늘도 어떤 '형태'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겠다.
그저 나대로, 나답게 사는 삶. 그게 정말 나에게 주어진 삶의 시계를 알차게 쓰는 방법일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