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란, 현재의 지옥을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

by 김희영

요즘에야 갑질에 대해 예민해졌다지만, 10여 년 전의 직장생활만 해도 직장 내 갑질이란 말이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그땐 선배나 사수가 업무 지시를 하면, 일을 가르쳐준다는 생각에 감지덕지했다.

방송국 막내작가들은 원고를 쓰는 작업에 곧바로 투입되지 않았다. 국어국문학과 출신에, 그래도 나름 열심히 글을 썼다고 자부했던 내가 방송국에 입사해 처음 했던 일은 지역 특산물을 조사하는 일이었다. 해양 다큐멘터리와 로컬 탐방 프로그램 중간 즈음 그 어딘가에 속해있던 당시 프로그램은, 프로그램의 구성이 매우 무거워서도, 또는 가벼워서도 안 됐다. 그래도 프로그램의 구성 원고를 쓰는 이는 내가 아니었기에, 나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수집해서 메인 작가 선배에게 갖다 줘야만 했다.

메인 작가 선배와 PD님이 주제를 선정하고, 나는 그에 맞는 자료를 준비했다. 가끔은 기사와는 상관없이 잘못된 정보들도 있었지만, 그 덕분에 곤욕을 치른 적도 많았다. 작년에는 바닷 것들을 그득 실어온 만선이었다는 기사자료에 따라 정보를 수집했다가도, 올해는 수온변화 등 자연 이슈로 조업이 불가능한 경우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미 그 주제로 촬영을 하기로 정했다면,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선장님께 전화를 걸어 싹싹 빌었다.

"선장님, 정말 죄송한데요. 오늘 밤이라도 배를 띄우면 안 될까요?"

"아가씨, 지금 장난해요? 이 날씨에 어떻게 배가 떠요! 그리고, 배를 한 번 띄우면 기름 값이 얼만 줄이나 알아? 그거 아가씨가 다 줄 거예요?"

어떤 선장님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붓기도, 또 어떤 선장님은 나의 방송국 내선번호와 개인 연락처를 차단하기도 했다. 바닷일이라는 것이 그랬다. 언제, 어느 때에 변수가 생기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괜히 지역의 군청이나 시청의 해양 관련 담당 부서에 전화를 걸어 울거나 하소연하는 날들도 많았다. 그래도 공무원 분들이라도 어쩌겠느냐. 어쩔 도리가 없으니, 괜히 속만 태우는 나였다.

주급 25만 원 막내작가의 삶은 그리도 박복했다. 6시에 퇴근도 하지 못한 채, 방송국 구석에 앉아 선장님의 연락을 기다리며 가슴을 졸였다. 9시 뉴스데스크가 끝날 때까지 나는 집에 가지 못했다. 밤늦게까지 편집을 하며 야근을 하던 PD 님들과 부장님들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곤 하셨다.

"김작가, 집에 안 가요?"

"네, 아직 할 일이 남아서요...."

자리에 앉아있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다음 날 출근이 두려웠다. 어쩌면 좋지? 또 메인 작가 선배한테 혼날 텐데, 그거 섭외 어떻게 됐냐고 또 물어보실 텐데. 그리고 또 한 편으로는 선장님과의 전화를 기다리면서도 선장님이 전화를 안 받기를 바라기도 했다. 어차피 전화를 받으시면 나에게 또 욕설만 쏟아 내실텐데, 하고 말이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나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방송작가를 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면 방송작가를 할 거냐고 묻는다면, 사실 나는 두 번 다시 방송작가를 경험하고 싶지 않다. 어떤 사수와 선배, 환경을 만나느냐에 따라 중요하겠지만, 나에게 방송작가의 생활은 '지옥'이었다. 차라리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나는 기꺼이 밤새 야근을 해서라도 그 일을 끝냈을 것이다. 그러나 천재지변 등의 이유로 생긴 시련, 신이 내가 어디까지 짓눌리는지 시험하는 듯한 고통은 감내하기 힘들었다. 나에게 방송작가의 생활은 그랬다.

물론 그 시기를 겪으면서 나도 성장한 것은 분명 있었다. 난생처음 방송국의 환경을 경험한 것, 돌발상황이 생겼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 때론 나의 의지로도 꺾을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점들일 것이다.

나는 방송작가를 하면서 전화 공포증이 생겼고, 선배 작가 밑에 기가 죽은 채로 살았다. 방송작가를 경험하는 1년 동안 가슴 졸이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나는 한 가지 꿈이 생겼다. 내가 PD가 된다면 오롯이 창작에 대한 즐거운 고통만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그즈음부터 나는 PD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창의적인 일에 대한 확장이라고 해야 할까. 나에게 꿈을 꾸는 일은 망상을 넘어,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주는 동아줄, 그게 썩은 동아줄이 아니길 바라며.


그리고 나는 또다른 형태의 새로운 지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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