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브라소'(Pierre Brassau
순수예술 Freie Künste (과 침팬지)
의도치 않은 형상들이 예술, 혹은 예술과 동등한 무언가로 인지되는 것도 힘든데, 하물며 예술로 인정받기는 더 힘들다. 추상 예술(앵포르멜)은, 예술가의 의한 경우엔 색의 조합으로서, 유아나 동물에서 온 경우엔 낙서로서 간주된다.
예술 역사가,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는 도상해석학자 출신으로서 추상 미술과는 거의 관련이 없었으며, 1957 년 잭슨 폴락 (Jackson Pollock)의 그림과 당시 유명한 침팬지 베시 (Betsy)의 "(Furor divinus)"를 비교했다.. 동물이나 유아의 (비구상,즉 추상)그림이 기존 예술가의 (추상)그림보다 더 의미심장하게 보여지게 되는 경우에도 그들의 창작은 예술로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 - 심지어 회화적 질을 식별 할 수있기 위해서 그러한 그림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면. 그리고 그것은 세상과 예술에 대한 편견없는 인식의 문제이다. 흡연구역 마저도 그 틀안에 포함시키는 오늘의 예술 말이다.
동물원에서 놀던 침팬지를 데려다가 그림을 그리게 하고 '피에르 브라소'(Pierre Brassau)라는 프랑스 출신의 작가명까지 주어 1964년 스웨덴의 한 갤러리에 네 점의 작품을 전시 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피에르 브라소의 작품을 감상했던 모든 예술 평론가들은 그의 파워풀 하면서도 섬세한 붓 터치 기술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스웨덴 저널리스트의 발칙한 쇼 , 단순 사기극인가? or 제도권 예술계에 경종을 울리는 중요한 해프닝인가?
아카데미에서 온 예술은 더 이상 아파트하이트시스템(Apartheid System; 차별정책)이 아니다.
오늘날 현대적인 의미에서 예술로서의 예술, 진기하고 경복할 만한, 보존해야 할 작품을 만들어내는 타고난 , 어떤 숭배 할 가치가 있는 예술가적 성격이 그 뒤에 돋보이는데, 이 예술은 결코 인류사의 보편적인 문화현상이 아니다. 서양국가들은 자기네들의 예술을 뒤 늦게 발명했다. 그들은 예술에 규칙을 부여하고 시스템을 만들었으며 캐논( 그리스어 kanon; 규범, 미술에서는 이상적 인체의 비례를 의미* 기원전5세기 경, 그리스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 부터 다빈치,뒤러까지 이어지는 연구 ) 의 형태를 반복적으로 상세히 연구함으로 예술을 구별 하고자 했다. 중세에는 일곱가지의 순수 예술을 철학의 하위에 두었는데, 차례로 Grammatik문법, Rhetorik수사학, Dialektik 변증법, Arithmetik 산술, Geometrie 기하학, Musik 음악, Astronomie 천체학 이었다. 대략 계몽때 부터 현대까지 예술로 파악하고 무엇보다도 문화적 성취로 여겨지것은 부차적인 역할이 거의 없었다.
이 “서양” 예술시스템은 계몽때부터 오늘날까지 ‘순수’ 예술 schönen Künste 을 조형예술, 공연 예술(연극, 무용, 영화), 음악과 문학의 유형으로 구분한다. 종종 소위 시각 예술 ‘조형,예술 Bildende Kunst 로 불리는 것들은 고전적 장르로서 조소, 회화, 드로잉, 그래픽, 포토그래피로 분류한다. 이와 대조 되는 응용예술의 개념에는 기술공예와 수공예 같은 디자인이나 건축의 다양한 분야가 있다. 오늘날까지, 그것들의 요구와 질은 순수예술과 응용 예술에 따라 차별화되고, 높고High 낮음Low 이 분리되며 예술은 다양한 예술들, 종류 및 장르로 세분화되어 각각의 분수에 맞는 전문 박물관, 전시장, 비엔날레 및 페스티벌에서 전시된다.
예술, 혹은 예술로서의 비예술, 혹은 비예술 의 인지는 종종 면밀하고 설득력 있는 시스템과 프레임에 의해 통제되고 있지만, 그 또한 추상적이고 엘리트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 무엇을 예술로 간주하고 간주하지 않거나, 혹은 덜 간주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심도 깊은 통찰력보다 오히려 규정된 사회적 가치관을 더 중시한다는것이다. 그 구별들은 ‘예술’ 에 대한 일종의 반영적이고 상호주관적인 고찰에 저항하기 힘든 평가들에 기인 한다. 시스템들과 분류학들은 예술에 대한 우리의 시야를 열어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좁히기도 하고 우리의 인식을 손상시킨다. 이러한 학문적 규정은 이미 입지를 잃은 지 오래다. 그런 경계선은 선명함을 잃고 계속해서 녹아들어 사라져 가고있다. 오랜동안 금기시 되었던 일부 예술의 오락적특성과 그 유동성이 더 이상 범주로 인해 배제되지 않을것이다. 만화는 교육환경에 오랜동안 일종의 공포(?) 내지는 상위예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한 예술의 수용에 관한 편견적 성격은 오랜동안 - 실제 논쟁때문에 민감한 - 의구심에 있어서 특히 사진과 영화에, 그리고 서커스와 같은 현상들을 포함하는 다른 범주 및 장르와도 관련하여 나타난다.
하나의 비엔날레나 페스티벌이 미디어에서 명확하게 정의 할 수있는 예술 장르를 제외하고 단 하나의 섹션에만 전념하기 힘들다. 영화비엔날레 조차도 2006년부터 “포럼 익스펜디드”라는 이름하에 , 예술과 영화의 경계에서 아방가르드, 실험 그리고 새로운 설치적인, 퍼포먼스적인 표현양식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전시의 시설, 형식 및 내용 또한 변화한다. 예술-, 자연-, 패션-, 과학기술 각 분야의 박물관 등은 초학문적 협력을 찾아 나서고 다른 예술들 또는 비예술의 맥락에서 각각의 집대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술과 예술들의 경계 허물기는 연구에도 반영되고 대학교나 미술대학들Kunsthochschulen 이 제공하는 과정에도 물론 반영된다. 1933년 조직되어 1957년까지 존재했던 초학문적 기관 Black Mountain College(BMC) 는 요셉 알버스Josef Albers 의 지도 아래 개혁적교육 접근 방식을 구현하고 조형예술과 더불어 경제학,물리학, 무용, 건축, 음악의 내용들을 계층없이 병치했다.
참고문헌
Borderlines: Kunst, Nichtkunst, Nichtkunstkunst .Kunstforum international, Martin Seid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