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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J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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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J Sep 08. 2015

우동집에서

회상과 그리움

뒤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한산한 우동집에 들어가 우동 한 그릇을 시켰다.

그러고는 벽에 걸린 메뉴판을 멍하니 쳐다보며 앉아 있는데,

한 남자 아이가 

한 뼘 남짓되는 장난감 칼을 들고는

가게로 뛰어 들어와서

잠시 두리번대더니

주방으로 들어가

음식을 조리하는 가게 주인 아저씨에게

칼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슈퍼카이저!!"

아주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런데,

"으워어어어억!!!"

아이보다 더 큰 목소리로

자기 배를 움켜쥐고

쓰러지는 척을 하는

아저씨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한참을 웃고 있는데

불현듯 내 아버지가 생각났다.

어릴 적, 

외동으로 혼자 크던 나에게

퇴근해서 들어오는 아버지는

하루종일 기다리다가 만나는 반가운 친구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 어깨에 올라타거나 팔에 매달리며

지친 아버지를 많이 귀찮게 하곤 했는데,

그 때 마다 우동집 주인아저씨처럼

온갖 오버를 하시며 받아주시곤 하셨다.

많이 어릴 때라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직도 하나 또렷히 기억하는 게,

하루는

내가 만화영화에서 본 주인공의 펀치를 따라한답시고

그 조그만 손을 아버지 복부로 날렸다.

"으악~아부지 죽는다~~~~"

이러곤 배를 잡고 쓰러지는 연기를 하시더니

털썩 쓰러지시는게 아닌가?

그 때 난 정말 아버지가 내 펀치에 죽은 건 줄 알고

누워있는 아버지를 붙잡고 아빠 미안하다며 집이 떠나가라 울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데도 웃음이 나는 이 이야기가 

20년도 더 된 옛 이야기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우동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잠시 회상을 하고 있는 사이 우동이 나왔다.

내 앞에 놓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동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 속엔

우동집 주인아저씨도

20여 년 전의 내 아버지도

그리고

이제는 연로하신 지금의 내 아버지도

모두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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