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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J Sep 13. 2015

오잉과 맥스봉


"아이야, 너 거기서 뭐하니?"


교외를 지나다가

눈이 너무 욱신거리고 무거워서

잠시 차를 세우고 기지개를 켜는데

한 여자아이가 길가에 쪼그려 앉아

제법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기 손만 한 작은 삽으로

꽤나 그럴듯하게 한 삽씩 흙을 퍼내고는

손목에 대롱대롱 매달린 검은 비닐봉지 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파낸 곳에 넣어

정성스럽게 다시 묻고 있었다.


"농사지어요."


위험하게도 길가 땅에 쪼그려 앉아

농사를 짓고 있다는

이제 겨우 다섯 살 남짓 됐을 법한

어린 소녀의 대답에

호기심이 생겼다.


"아, 그래? 그래서 뭘 그렇게 열심히 심고 있니?"


손에 묻은 흙을 박수 치듯 짝짝 털어내고는

수줍은 듯이 대답했다.


"오잉이랑 맥스봉이요."


너무 앞뒤가 맞지 않는 대답에

순간 내 귀를 의심하다가

현실을 받아들이고는 웃으며,


"혹시 그 봉지에 뭐가 들었나 한번 볼 수 있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열어 보여주는 봉지 안에는

꽤나 비슷한 크기로 일정하게 조각낸

오징어 맛 과자와 소시지가

한 주먹 들어있었다.


"우와~ 오잉이랑 맥스봉 농사짓는 거야?"

"네, 아빠가 먹고 싶은 거 농사지으면 그게 커서 나중에 더 많이 먹을 수 있댔어요."


너무 귀여워서

이성의 끈을 뚫고 나와 터지려는 웃음을 꾹 참고

턱 아래 밭 구석 쪽을 가리키며


"농사 저기다가 짓는 게 어때?

여기는 차 다녀서 위험해.

그리고 저 쪽이 더 빨리 쑥쑥 자랄 것 같은데?"


가리키는 곳을 잠시 쳐다보더니


"네~!"


외마디 대답을 하고는 신이 난 듯

과자와 소시지가 든

검은 비닐봉지를 빙빙 돌리며 달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데

욱신거리고 무거웠던 눈이 편안해졌다.

아이에게 손 인사를 하고는

다시 한 번 크게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보는데

봄바람이 살포시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아주 따뜻한 봄의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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