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너 거기서 뭐하니?"
교외를 지나다가
눈이 너무 욱신거리고 무거워서
잠시 차를 세우고 기지개를 켜는데
한 여자아이가 길가에 쪼그려 앉아
제법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기 손만 한 작은 삽으로
꽤나 그럴듯하게 한 삽씩 흙을 퍼내고는
손목에 대롱대롱 매달린 검은 비닐봉지 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파낸 곳에 넣어
정성스럽게 다시 묻고 있었다.
"농사지어요."
위험하게도 길가 땅에 쪼그려 앉아
농사를 짓고 있다는
이제 겨우 다섯 살 남짓 됐을 법한
어린 소녀의 대답에
호기심이 생겼다.
"아, 그래? 그래서 뭘 그렇게 열심히 심고 있니?"
손에 묻은 흙을 박수 치듯 짝짝 털어내고는
수줍은 듯이 대답했다.
"오잉이랑 맥스봉이요."
너무 앞뒤가 맞지 않는 대답에
순간 내 귀를 의심하다가
현실을 받아들이고는 웃으며,
"혹시 그 봉지에 뭐가 들었나 한번 볼 수 있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열어 보여주는 봉지 안에는
꽤나 비슷한 크기로 일정하게 조각낸
오징어 맛 과자와 소시지가
한 주먹 들어있었다.
"우와~ 오잉이랑 맥스봉 농사짓는 거야?"
"네, 아빠가 먹고 싶은 거 농사지으면 그게 커서 나중에 더 많이 먹을 수 있댔어요."
너무 귀여워서
이성의 끈을 뚫고 나와 터지려는 웃음을 꾹 참고
턱 아래 밭 구석 쪽을 가리키며
"농사 저기다가 짓는 게 어때?
여기는 차 다녀서 위험해.
그리고 저 쪽이 더 빨리 쑥쑥 자랄 것 같은데?"
가리키는 곳을 잠시 쳐다보더니
"네~!"
외마디 대답을 하고는 신이 난 듯
과자와 소시지가 든
검은 비닐봉지를 빙빙 돌리며 달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데
욱신거리고 무거웠던 눈이 편안해졌다.
아이에게 손 인사를 하고는
다시 한 번 크게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보는데
봄바람이 살포시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아주 따뜻한 봄의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