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어머니께서 내 집에 오셨을 때 였다.
"수건이, 이게 뭐꼬? 이걸로 사워하고 몸이 닦이긴 하드나?"
늘 그렇듯 '샤'발음이 어색해서 늘 '사워'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말을 퉁겨내듯이
"왜?잘만 닦이드만... ..."
"다음에 내리오거든 수건 챙기줄테니까, 수건 가져가라!"
불호령이다. 올해 이순의 나이가 되셨어도 십년 전이나 이십년 전이나 목청 하나는 다를게 없는 내 여사님이다.
그렇게 까맣게 잊고있다가 이번에 부모님댁에 내려갔다가 올라올 때 어머니가 쥐어주는 열댓장의 새 수건이 담긴 봉투를 손에 들고서야 잊었던 지난달 여사님의 호통이 떠올랐다.
"울 최여사님 기억력도 좋으셔. 나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네."
"니가 하는기 그렇치 뭐, 후딱 가라. 내일 출근해야지."
늘 말은 억세게 해도 이럴때마다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어머니다.
"차 기름은 채웠나?"
"어."
"아까 담아논 반찬은 챙깄제?"
"어."
"도착하거든, 전화한통 해라이~"
"어. 엄마 내 가께."
"수건 오래쓴거는 걸레로 쓰든가, 아니면 그냥 아깝다 생각말고 버리라. 수건 마이 챙기 담았으니까는, 알았나?"
"... ..."
"알았나? 몰랐나?!"
"어~ 알았다~"
집을 나서서 차가 고속도로에 오르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랄, 날씨도 참... ..."
궁시렁 대다보니 어느덧 빗소리에 미끄러지듯 집 주차장에 들어섰다. 챙겨온 짐이 많아서 두어번 짐을 옮기는 사이 비를 맞아 머리와 옷이 제법 끈적하니 젖었다. 짐을 내려놓고 씻으려는데, 수건 봉투가 눈에 띄어 가장 두툼한 놈 하나를 걸이에 걸쳐놓고 샤워를 하고는 수건을 집으려는데 수건에 새겨진 문구가 보였다. 행사 기념으로 나눠주는 기념수건이었다. 어머니 씀씀이를 생각해 절대 수건을 돈주고 살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데, 수건에 '2006. 1'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멍하니 수건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잠깐 사이에 10년전 기념으로 받은 두툼한 새 수건을 차마 쓰지 못하고 서랍 한구석에 고이 모셔놓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쓰던 수건을 몇 년째 썼지만 절대 새 수건 한 장 허투루 쓰지않고 아끼고 아끼는 그 마음이 가슴 시리게 와닿았다.
씻고 나와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여사님, 아들래미 잘 도착했으요."
"와 이래 전화가 늦노, 도착하면 바로 연락하라 했드만."
"씻는다고... ... 엄마 챙겨준 수건 두툼하니 좋드만요."
"아들래미 주는 건데 아무거나 줄 수 있나? 오래 쓴 수건은 청소할 때 한번씩 쓰고 버리라 알았제?"
"어, 수건 고마워요."
"니가 왠일로 말을 이쁘게 하노, 낯 간지럽구로."
"하하하하, 아이다. 무튼 잘 도착했으니 걱정말고 푹 주무시소."
"오야~쉬그라~"
일찍 자려고 누우려는데, 침대 맡에 있는 어머니 사진이 보인다. 오늘은 평소보다 편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