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플로리다 하늘은 깜깜한 어둠으로 둘러싸였고 고요했다. 밤새 새벽이슬이 내려 수분을 머금은 공기가 땅 아래 깔렸다. 때마침 조용한 새벽 적막을 깨고 아이폰에 알림 벨이 울렸다. 아이폰 특유의 쨍쨍한 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깰까 황급히 알람을 껐다.
한 3시간 정도 잤을까.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에 앉아 전날 놓아둔 물 한 잔을 들이켰다. 시계를 확인하고 침대에 앉아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야 했는지 생각했다. 오늘은 비행이론, 항법등을 포함한 총 9개과목의 구술시험과 비행실기 시험이이 동시에 진행되는 날이기 때문에 짐 챙을 챙기는데 시간이 걸린다. 빠르게 몸을 일으켜 침대 옆 책상에 전날 시험 준비하며 사용한 널브러진 종이와 책을 주섬주섬 가방에 넣었다. 반대쪽 책상 한쪽에 산더미처럼 쌓인 책 사이로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항공법규와 아이패드도 챙겼다.
전날 시험 준비를 늦게까지 하는 바람에 책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필요한 짐을 뒤적거리며 항상 자기전에 정리할껄 후회한다. 마지막으로 벽에 테이프로 붙여 놓은 지도를 조심스럽게 뜯어 가지런히 접었다. 벽에 붙여놓은 플로리다 지도에는 도시와 도시를 잇는 선들이 많이 그어져 있다. 유효 기간이 만료돼 한 달 전 새로 샀지만 시험 때마다 붙였다 떼기를 여러 번 반복한 탓에 지도 귀퉁이는 다 찢어져있었다. 시험에서 어떤 경로를 물어보게 될지 몰라 여러 도시를 가는 시나리오와 안전 사항을 밤새워 준비했지만 물어보지 않길 바라고 있다.
우리학교에서 까다롭기로 소문난 카를로스 성격에 구술시험에서 안 물어볼 리 없다. 애매한 답변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의 성격에 잘못 걸리면 결국 공부를 안 했다고 밖에 얘기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시험 보는 4시간 동안 지쳐서 까먹길 바랐다. 시험자료들을 담은 가방은 한쪽으로 치워두고 다른 가방 속에 비행 장비를 담았다. 헤드셋 건전지와 여분, 선글라스, 니보드, 체크리스트, 여권, 신체검사서 등 빠진 것 없나 다시 한번 확인했다. 비행 실기가 있는 날은 비행 가방을 준비하는데 평소보다 예민해진다. 비행 전이든지 비행 중이든 필요한 물건 중 하나라도 없는 날은 상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있을 구술시험과 이후 두 시간 정도 진행될 비행 시험에 난 아마 초 죽음이 예상된다.
입학 후 이론 교육을 마치고 본 필기시험 이후 있는 첫 비행 실기평가이기에 전날 준비를 많이 했다. 내가 있는 비행학교에서는 6주의 이론 교육 동안 총 3번의 학교 자체 필기시험을 보고 통과하면 실제 자격증 필기시험을 치른다. 그 후 똑같은 방식으로 구술과 실기시험을 진행하며 총 3개의 자격증을 따야한다. 학교 측에서는 학생들의 자격시험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이처럼 자격시험 전 중간 평가를 많이 진행한다. 이 때문인지 우리 학교 학생 중 자격시험에서 떨어진 학생을 보는 일은 드물었다. 그만큼 짜잘짜잘한 시험이 2~3주에 한번씩 진행됐고 그떄마다 우리는 밤새기 일쑤였다.
비행 전 8시간 수면은 권장 사항인데 시험이 있는 날은 반도 지키기 힘들다. 시험 기간에는 레드불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신기하게도 시험 있는 그날 하루는 긴장한 탓에 모든 감각과 신경이 살아있었다. 동공은 커져 있고 쿵쾅거리는 심장박동은 지속됐다. 덕분에 실기시험 때 졸거나 집중력이 흐트러 질수 없었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집에 돌아와 기절해 잤다. 돌아오는 길에 맥도날드에 들러 더블 쿼터 파운드 치즈 버거에 제로콜라를 주문했다. 이 루트는 이후 마지막 시험 날까지 내게 주는 유일한 보상이였다.
짐 두개를 들고 문을 나와 차로 향했다. 수분을 잔뜩 머금은 공기가 온몸에 달라붙어 금방이라도 땀이 날것만 같았다. 차로 향해 짐을 두기 위해 조수석에 문을 열었다. 꽌 찬 조수석 문을 닫고 반대편으로 걸어 오며 하늘을 보니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 이제 해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고 아파트 주변에 청설모와 토끼 몇마리가 뛰어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