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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노트 Jul 28. 2022

시험시험시험 2

최악의 상황 최고의 상황

  오전 7시 30분 학교에 도착해 카페테리아로 들어갔다. 벌써 도착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학생들의 시험날짜는 모두 달라서 카페테리아는 항상 시험 준비로 한창이다. 오늘은 내가 그 무리에 꼈다. 다섯 개의 큰 책상 중 하나에 가방을 올려놓고 벤딩머신 앞으로 갔다. 3불짜리 레드불을 하나 집어 들고 단숨에 들이켰다. 몽롱한 정신을 바로잡는데 레드불만 한 게 없다. 아이패드를 꺼내 정리해놓은 자료를 다시 한번 훑었다.


  4명의 시험 담당 교관이 있지만 언제나 배운  이상의 것을 원하는 카를로스와 시험을  사람들은 그를 피하고 싶어 한다. 우리 학교 기피 대상인 그와 시험을  모든 학생은 시험이 끝나고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시험 결과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도 그를 피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주변에 한 명쯤은 있는 내기 하자고 하면  걸리는 친구가 나였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어느새 항상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버릇이 생겼다.


  대부분 교관은 보통 한 번 더 공부하라는 뜻에서 단번에 합격 시키진 않지만, 그는 한 번 에 통과하는 건 고사하고 2번 이상 재평가도 서슴지 않았다. 재시험마다 100불 이상의 비행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학생 입장에서는 그가 야속하기만 했다. 대부분 좋은 날씨이지만 플로리다의 우기인 6월~11월 사이엔 뇌우가 많은데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반 정도 비행이 취소되는 경우가 많다. 이 시기에 재시험까지 겹치는 날엔 꼼짝없이 집에서 창밖만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단번에 합격을 내주지 않는 그가 이런 학생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며 억울해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난 한 번에 합격해서 이 무리에는 절대 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8시 조금 넘어서 그가 학교에 도착했다. 우리는 카페테리아에서 가벼운 악수로 인사를 나눴다. 시험 때 냉정하고 까다로운 성격과는 달리 그는 항상 밝은 얼굴 세상 온화한 미소로 학생들에게 먼저 인사하는 유일한 교관이다. 라틴계 특유 친화력으로 학교에서 그가 모르는 학생이 없을 정도다. 나도 그를 알지 못했을 때 살짝 긴장했지만 처음 인사하자마자 그의 좋은 인상에 긴장이 많이 풀렸다. 시험을 보는 긴 시간 동안 시험 이야기만 하는 다른 교관과는 달리 카를로스는 안부도 묻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마치 단번에 합격을 줄 것만 같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와 시험을 보고 온 학생들은 모두 그의 미소에 속았다고 이야기한다.


  카페테리아에서 그와 인사를 나누고 그의 사무실에 들어가 앉았다. 마주 앉아 챙겨온 아이패드를 꺼내고 서툰 영어로 그의 질문에 답할 준비를 마쳤고 카를로스는 서류작업을 했다. 사무실 안이 조용해질수록 긴장감은 더해졌다. 나는 몇 번이나 더 이 친구를 만나야 할까. 한 번에 통과는 좀 어렵겠지..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긴장이 고조될 때쯤 그가 준비를 마쳤다. 그는 웃으며 가벼운 농담으로 내 긴장을 먼저 풀어주고 하나씩 질문하기 시작했다.


  나는 시험에 나올법한 인기 있는 문제가 담긴 족보도 가지고 있었고 그걸 토대로 책도 나름 꼼꼼히 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이 족보에 존재에 대해서 알았는지 이와 전혀 관련 없는 질문들을 던져댔다. 


  그가 준비한 질문은 대부분 조종사가 피해야하는 태도 다섯가지 등 한눈에 봐도 고리타분해 보이는 것들뿐이였다. 마치 대학 전공 시간 때 배운 스포츠의 네 가지 요소와 같은 느낌이었다. 보기만 해도 숨이 턱하고 막히는 문제를 그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그런 문제는 준비하지 않고 그냥 지나친 나는 대부분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단답형으로 알맞게 떨어지는 문제가 아닌 실제 상황에서 조종사로서의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비행 기술은 배울 수 있지만 성품은 끊임없이 되새겨야 한다고 했다. 이어진 비행 실기에서도 그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비행 조작에는 조금 자신이 있어 망친 구술시험을 만회해 보고자 최선을 다했다. 나름 자신이 있던 터라 실수 없이 마무리했다. 


  우리는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오늘 시험의 총평을 했다. 어떤 문제를 틀렸고 다시 공부해오라는 교관들과 달리 그는 내게 매순간 조종사 마인드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매 순간 승객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 비행 기술이 곧 승객의 목숨을 살리는 도구라는 말을 건넸다. 나 혼자 선 비행을 할 수 없기에 남을 위하지 않으면 조종석에 앉을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한 손에 수두룩하게 틀린 질문이 담긴 종이를 들고 학교 밖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복잡한 감정이 들었지만 그를 욕하는 그룹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차에 앉자마자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온갖 피로가 몰려들며 액셀 밟을 힘도 없었지만 행복했다. 맑았던 하늘은 어느새 어두워지고 있었고 그렇게 내 첫 시험은 끝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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