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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노트 Jan 20. 2022

서른에 새로운 도전이 가능했던 이유 2

마음의 소리



“합리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맞추고 비합리적인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 맞춘다.

 따라서 진보는 전적으로 비합리적인 사람에게 달려있다.”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ow).





미간에 주름을 잡고 어렵게 찾아낸 기억의 시작은 아마도 2019년 어두컴컴하고 적막한 작은 교회 본당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열심을 다해 다녔던 건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께 보고 배운 고민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 시기에 전 한 가지 고민을 가지고 항상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처음엔 머릿속에 작은 상상으로 마치 작은 세포처럼 자리 잡았던 그 고민은 살아남기 위해 매일 온몸에 영양분을 빨아드리듯 제 생각을 하나씩 먹어갔습니다. 처음 몇 달은 무시해도 큰 영향이 없었지만 점점 다른 생각을 먹어가며 커지더니 이제는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크게 제 머리 한가운데를 차지했습니다. 다이어트처럼 평생 안고 갈수 있는 고민에 크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해결할 방법을 찾아본 결과 나로서는 도저히 이 고민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내 안에서 답 찾기는 빠르게 포기하고 밖으로 눈을 돌려 평소 가까운 지인부터 부모님까지 하나둘씩 떠올려봤습니다만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잘 털어놓지 않는 성격 탓에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잘못 살았나 회의감도 느껴도 본 것 같습니다. 사실 사람이 없기도 했지만 그보다 이 질문의 수준은 아무리 가다듬어도 훌륭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안고있던 고민을 이젠 내려놓고 싶은 마음에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요일마다 습관처럼 갔던 그곳으로 행했습니다.




-  당시 나름 이름있는 대학에 경영학 석사 논문 발표를 앞두고 미리 쌓은 여러 인턴 경험을 토대로 졸업 후 취업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마 이 땐 저와 함께 졸업하는 동기들 모두 미래에 대한 막연함이나 두려움보다 앞으로 하게 될 출근에 대한 기대감과 더 이상 학생 신분이 아니라는 아쉬움을 많이 나눴던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인턴 경험을 했던 컨설팅 회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둔 덕에 컨설팅 회사 취업이 가능했던 시기였고 부모님도 그쯤으로 알고 계셨습니다. 순탄해 보이는 이 과정을 당연한 순리쯤으로 알고 논문을 마무리하며 취업을 준비하던 어느 날 어떤 상상 하나가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언제 어디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 나지 않습니다만 너무 자연스레 떠올려진 상상이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그 시작은 특별할 것도 없는 ‘출근길’이었습니다. 똑같은 아침에 일어나 멀끔히 차려입고 집을 나서는 길. 지하철 1호선에 끼어타고 2호선으로 떠밀려 갈아타고. 드디어 회사 도착.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모두 비슷한 시간대에 길에 모여 한 방향으로 걸어가 지하철을 타는 출근길입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이 삶을 그땐 ‘ 답답하겠다 혹은 그 근처로 이사를 가야 하나? 집값은 얼마지..’ 같은 걸 정답으로 알고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저에게 맞지 않는 옷을 집어 들고 몸을 구겨 넣어 단추는 터질듯하고 바지는 잠기지도 않았지만 다들 입는 옷을 입었다는 사실에 안정감쯤을 느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저 그런 생각이 마치 정답으로 받아드리던 어느 날. 그날도 평소와 같이 늘 하던 상상이 머리를 지배해 조금만 진지하다 같은 정답으로 덮으려 하던 순간이었습니다. 마무리하려던 그 순간 마음 한편이 답답해지며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출근하는 제 표정과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두들 가는 무리 속에 섞여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도 모르는 그 길을 걷고 있는 나. 마치 좀비처럼 흐느적흐느적 발을 떼며 걸어가는 그 모습과 표정은 처참했습니다. 누구를 위해 혹은 무엇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지도 모른 채 30년 혹은 그 이상을 살아가야 하는 길. 그 길은 저의 생각과 판단은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았고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을 정답으로 알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생각은 계속되었고 갈수록 당연해 보였던 것들에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무시하려 해도 지겹도록 따라다니는 그 질문을 적어도 한 반년쯤은 품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답을 찾길 포기한 채 터덜터덜 들어간 교회 본당 긴 장의자에 앉아 두 팔꿈치를 앞자리 등받이에 걸쳐 두 손으로 이마를 짚었습니다. 그동안 훌륭한 문장을 생각해 내지 못해 그 누구에게도 묻지 못했던 고민을 작지만 견고하게 속삭였습니다. '도대체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 수많은 직업이 답이 될 수 있는 간단한 이 질문에 답을 던져봤지만 결코 마음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반복되는 답답함에 더 이상 이 무의미한 짓을 그만하고 이제는 나에게 묻고 싶어졌습니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것인지. 그렇게 물어가며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꽤 긴 기간 나를 생각한다 해도 명확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 자연스럽게 깨달아 진 사실이 있었습니다. 내 안에서 답을 찾기로 한순간부터 진심으로 살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드디어 해결됐다며 마음이 씻겨나가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나름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처음 느껴본 그 느낌은 분명 겉모습을 꾸미고 다듬었을 때는 느껴볼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루하루 느껴지는 그 자신감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싶어졌습니다. 점점 그 문장으로 제 삶을 정의하고 싶다는 열정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며 보내는 시간은 모두 소중했으며 결국 얻어낸 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나답게 ‘잘’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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