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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노트 Jan 14. 2022

파일럿에게 필요한 한 가지 능력  1



  파일럿은 2019년 나답게 살기로 결정한 후 처음으로 선택한 직업이였다. 마음에 결정을 내리고 부모님께 자초지종을 통보하다시피 말씀드렸다. 이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간절함을 가득 담은 통보를 받으신 부모님의 의견은 둘로 갈렸다. 


   좋은 결정을 내렸다고 무려 박수를 치며 극찬하신 아버지와는 다르게 어머니는 걱정이 많으셨다. 안타깝게도 비행사고에 대한 걱정은 아니었고 나의 잠에 대한 걱정이셨다. 나는 잠으로 자며 스트레스를 풀고 한번 자면 잘 못 깨어나는 편이였다. 알람과의 싸움은 가뿐히 승리할 만큼 잠귀가 어둡고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난 아침에 눈 도뜨기 힘들어할 정도인 눈 뜨자마자 바로 일어나서 기지개 켜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대단함을 느꼈다. 눈을 뜨더라도 침대 위에서 이것저것하고 있면 30분은 가볍게 지나간다. 이런 나를 30년 넘게 보신 어머니는 미래를 내다보신것 같다. 아침저녁 가리지 않고 비행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조종사라는 직업을 과연 저 잠 많은 아들이 과연 해낼 수 있을지


  비행을 시작할 때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중에서도 공군 장교로 전역하신 아버지 친구분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분은 공군사관학교 출신으로 비행을 하셨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마무리를 하진 않으셨다. 자세하게 여쭤보지는 않았지만 만나 뵙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분명 잠 때문은 아니실 것이다. 

  

  20살 때 군대 입대 전 한번 뵙고 잊고 지내다 아들 비행을 한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신 아버지 덕분에 다시 한번 연락이 닿았다. 근무하고 계신 학교로 찾아오라는 연락에 그다음 날 학교로 가는 셔틀 시간을 알아보았다. 아빠의 이런 팔불출 같은 모습이 도움이 될때가 있다. 


  감사하게도 정문 앞에서 타고 오신 차에 기대어 저를 기다리고 계신 모습을 발견하고 단숨에 달려갔다. 10년 전 그날 어깨에 무궁화 두 개를 달고 회색에 신형 전투복을 입고 계신 모습과는 달리 갈색 정장을 입고 계셨다. 


  큰 키는 아니셨지만 왠지 군복을 입으셨을 때보다 정장이 더 잘 어울리셨고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아마도 군복 어깨에 달려있는 무궁화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모습만 빼면 왼쪽으로 넘긴 가르마부터 강렬한 눈빛을 품고 있는 온화한 눈매는 여전하셨습니다.


"안녕하셨어요, 교수님"

"잘 지냈니, 네가 조종사의 길을 가기로 선택했다고 너희 아버지에게 들었다."


  터미널 근처 카페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서 나눈 첫마디였다. 주문한 커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잠시 밖을 바라보았다. 8년만에 뵌 교수님의 눈을 마주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서 시선을 살짝 돌렸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환갑이 지나신 나이였지만 열정 만큼은 여느 청춘 못지않게 강해 제 속마음을 읽힐 것만 같았다. 학교는 시골 외각에 자리 잡고 있어 정문 앞에는 논이 있었고 학교 뒤로는 산이 버티고 있었다. 카페 안에서 바라본 12월에 학교 모습은 틈 하나 없이 찬 공기를 가득 품은 안개가 자욱이 끼어 있었다. 


테이크 아웃 잔을 덮은 뚜껑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두 손으로 잔을 감싸며 따뜻함을 느끼려 할 때 교수님께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답을 듣고자 하시는 질문이라기보다 답을 주시기 위한 질문에 가까웠습니다.


"정말 훌륭한 선택을 했더구나, 멋진 결정이야."   

"파일럿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지 알고 있니?"


"..."


  말씀하시는 속도와 분위기로 보았을 때 듣자마자 이건 답을 해선 안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면접에서나 나올법한 흔한 질문 뒤에 꼭 알아야만 하는 대답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두 손을 모으고 묵묵히 이어서 하실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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