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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노트 Feb 02. 2022

숨겨진 허드슨 강 기적의 비밀

Pilot In Command; PIC


 



  플로리다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수업이 시작됐다. 이 수업은 미셀이라는 사십 대 중반쯤에 금발에 미국인이 가르치는 커뮤니케이션 수업이었다. 관제사와의 통신, 비행용어 등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그녀는 염소처럼 떨리지만 다소 단호한 말투로 우리에게 비행 시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가르쳤다. 모든 수업은 일방적으로 듣는 수업이 아닌 토론하고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총 6주 차 수업 중 3주 차 때부터 항공기 관련 사고 케이스 스터디 수업이 시작됐다. 각자 배정된 항공기 사고 사례 영상을 보고 간단한 요약과 함께 당시 조종사의 부족했던 부분과 더 나은 조치를 준비해 영어로 발표하는 수업이었다. 수업에 앞서 미셀은 우리에게 수업에 목적을 설명했다. 그녀는 다른 수업과 다르게 꽤 진지한 목소리로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항공기 사고에 대한 후속 연구를 통해 우리에게도 일어날 법한 상황을 방지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아직 비행을 하지 않는 우리였지만 조종사로 사는 한 나에게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에 더 진지하게 그녀의 설명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설명을 마친 그녀는 항공기 사고의 대표적인 사례 중 ‘허드슨 강의 기적’으로 잘 알려진 1549 편 항공기 사고 사례 영상을 틀었다. 비행을 처음 시작하는 우리에게도 ‘설리’라는 영화로 익숙한 내용의 영상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간단한 줄거리는 이러하다. 2009년 1월 추운 겨울 라과디아 공항에는 이륙을 기다리는 많은 비행기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들 중 유에스 에어웨이즈 1549편 항공기(US Airway 1594)가 이륙 허가를 받고 활주로로 향한다. 당시 기내에는 비행경력 42년에 1만 9천 시간의 비행시간을 쌓은 캡틴 설렌버거 기장과 배테랑 부기장 제프 스카일스 외 승무원 5명, 승객 150명이 있었다. 폭발적인 엔진 파열음과 함께 비행기는 빠른 속도로 달렸고 이륙 속도에 도달하자 기장은 기수를 들어 이륙을 시도했다. 이륙 후 2분 뒤 갑자기 날아든 새떼와 충돌하며 양쪽 엔진에 출력을 모두 잃게 되고 비상용 엔진 점화 장치까지 모두 잃은 상태에서 기장은 가장 먼저 관제소에 비상선언을 알렸다. 관제소에서는 주변 공항에도 이와 같은 사실을 알리고 활주로를 비워주기를 요청했으며 기장 또한 놀러 울 정도로 침착하게 비상착륙을 위한 공항을 찾았다. 하지만 고도가 너무 낮고 주변에 높은 건물이 많아 이륙했던 라과디아 공항은 물론 다른 공항까지 접근이 어렵다고 판단한 기장은 허드슨 강에 착륙을 결심한다. 허드슨 강에 성공적으로 착륙한 뒤 기장은 문을 열고 나와 승객부터 살폈다. 승객 150명 전원 생존. 기체 문이 열리고 승무원과 기장, 부기장은 승객 대피를 위해 힘썼다. 모든 승객을 내보내고 나서 기내를 두 번 세 번 살핀 기장 설렌버거는 가장 마지막으로 비행기 문 밖을 나왔다.






조종사로서 모든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지만 기장 설렌버거와 부기장 스카일스를 괴롭히는 사건은 그 후 벌어졌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사고조사위원회에서는 이륙 전부터 착륙까지 있었던 모든 상황을 면밀히 조사했다. 위원회에 말에 따르면 사고 상황을 수십 번 시뮬레이션으로 돌려보아도 공항으로 갈 수 있었던 상황인데 왜 위험하게 강으로 갔는지 추궁했다. 새떼와 충돌이 일어난 후 허드슨강에 착륙하기까지 걸린 시간 208초. 사고 직후 기수를 돌려 출발 공항으로도 충분히 갈 수 있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위원회에서 진행한 수십 번의 사고 시뮬레이션의 결과는 여전히 그들의 판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너무나도 안정적으로 출발 공항에 착륙했다. 기내에 모든 승객을 구하고 매스컴에서는 이른바 '영웅'으로 그를 표현했지만 위원회는 그의 판단을 전적으로 비판하며 기장으로써의 책임감에 대해 의문을 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42년 기장 경력에 의문을 품는 위원회와의 재판 과정에 지칠 대로 지친 설렌버거는 시뮬레이션 결과 앞에 좌절하며 사고 트라우마로 악몽에 시달리게 됐다. 시뮬레이션을 보며 지쳐가던 와중 설렌버거는 한 가지 허점을 파악했다. 시뮬레이션 장치는 새떼와 충돌 후 곧바로 기수를 공항으로 돌리도록 설계가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즉, 이미 새떼와 충돌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실제 그가 사고를 겪은 직후 상황을 판단하고 사고에 대처하여 허드슨 강에 착륙하기로 결정하기까지 고민한 시간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설렌버거와 부기장은 이의를 제기했고 위원회에서는 녹화된 그들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결정하기까지 걸린 '35초'를 적용해 다시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그 결과 1594편 항공기는 새떼와 충돌 직후 출발 공항인 라과디아 공항에 착륙이 불가능했다.



  1594편 항공기 기장 설렌버거의 허드슨 강 착륙 사례는 아직까지도 미국인들이 기억하는 자랑스러운 일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월스트릿을 포함한 모든 매체에서는 그의 과거를 재조명하며 그를 극찬했다. 학창 시절 멘사 수준의 지능을 가졌던 그는 16세에 첫 비행을 시작해 미 공군에서 제트기와 비행교관, 항공사고 조사 반등을 경험한 비행 분야 베테랑이었다. 그의 과거 이력은 모두로 하여금 모두를 살린 무모해 보인 결정에 대해 더욱 신뢰를 갖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후 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그의 판단력, 풍부한 경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큰 사고를 막은 중요한 요인이라고 표현했다. 




  이영상을 보고 발표를 준비하면서 떠오른 한 단어를 책상에 적었다. Pilot in Command; PIC. 한국말로는 기장이라는 뜻이다. 조종사, 기장, 파일럿 등 비행하는 사람을 표현하는 많은 단어가 있지만 PIC 만큼 기장으로써 갖는 책임감을 잘 표현한 단어는 찾아보지 못한 것 같다. 비행을 처음 시작한다고 했을 때 어머니께서 참 많이 반대하셨다. 목숨이 달린 위험과 이 두려움을 아들이 비행하러 갈 때마다 느끼실 때문인 것 같다. 나 또한 이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언제나 위험은 예상 밖에서 타고 들어오기 때문에 예상하고 미리 막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그 모호함과 두려움에 끝없이 적응하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비행 평가 과목 중 비상 상황 시 대처 방법에 대해 시험을 본다. 비행 시 비상상황을 파악하면 착륙하기 좋은 장소를 찾고 비상상황 원인에 맞는 비행 상태를 유지해 착륙하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평가받는다. 그 모든 상황 판단과 결정은 PIC, 즉 모든 것이 기장의 결정에 의해 실행된다. 성공적으로 착륙을 마치면 이때부터 PIC의 책임감을 필요로 한다. 자기 목숨보다 승객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 승객에게 티켓료를 받아서도 아니고 친인척 가족이 아니라 할지라도 내 목숨보다 그들의 안전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설렌버거가 착륙 후 맨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탈출해 나오는 모습은 모든 미국인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그는 맨 마지막에 나올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손이라도 흔들어야 하나, 아니면 이일로 나에게 얻어지는 무언가가 생가지는 않을까. 그 어떤 생각이 되었든 그가 보여준 두려움에 맞선 책임감이 참 부러웠다. 그가 가진 책임감은 무의식과 의식 안에 깊숙이 박혀 그를 움직이게끔 했다. 이런 사고 사례를 공부하다 보면 그 기장의 몸에 나를 대입해보곤 한다. 눈을 감고 상황을 떠올려 보면 등골이 오싹해지고 판단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잘못된 판단과 좋은 판단을 한 모두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때 잠시 눈을 뜨면 내가 지금 선택한 길이 얼마나 큰 희생을 요구하는지 깨달아진다. 비행은 피로 쓰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만난 적도 없지만 모두의 희생이 나에게 묵직한 책임감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이 길을 걷는다는 것에 무한한 감동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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