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본다는 말에는 눈을 뜨고 바다를 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본다는 행위에는 맨눈과 마음속 눈으로 보았던 바다를 그려보는 것을 포함한다. 그것은 예술성과 연결된 감상과 무관하지 않다. 바다를 본 후 눈을 감고 그 광경을 떠올리다 보면 바다를 묘사할 수 있는 회화적 감각이 출렁이고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묘사가 울렁인다. 바다의 경계를 확장하는 순간이다.
처음 보는 바다가 아닌데도 처음 보는 바다처럼, 바다가 생경하다. 가슴을 트이게 하는 푸르고 푸른 바다가 복잡하면서도 견고한 우울의 근원으로 보일 줄이야. 실제로 존재하는 바다를,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바다를 마음의 눈으로 집중해서 보니 추억에 숨겨진 모래알 같은 우울이 매우 선명해진다.
타인이 볼 수 없는 장면을 자기가 직접 목격하는 순간은 경이롭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보아도 자기에게만 보이는 장면이 즐겁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슬프게도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이상한 감정으로 그 즐거움이 희미해진다면, 분명히 어디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잦아드는 파도처럼 즐거움이 스르르 사라지는 이유는 여러 감정 중 우울이 밀려오는 순간이다. 마음을 파고드는 파도처럼 즐거움을 비틀고 파괴하면서 밀려드는 우울. 더럭 겁이 나서 구불구불한 마음을 바다에 던져버렸음에도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우뚝하게 서 있는 갯바위처럼 마음에 단단하게 박힌 우울. 마치 설득하지 않아도 되는 정당한 논리처럼, 배신할 염려 없는 지조처럼 단단하게 엉켜있는 우울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삶의 명분이 될 수 없는 추억 때문일 것이다. 추억으로 포장된, 더 이상 잔인하지 않아야 하는 과거 때문일 것이다. 망각할 수 없는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은 잔인한 일. 잊히지 않는 기억이 파도처럼 어디론가 떠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생각은 다른 기억을 데려와 머리를 어지럽게 만든다. 무언가 허구 섞인 이야기를 만들어 대체하지 않으면 못 살 것 같은 우울이 악몽으로 치닫던 날, 바다를 바라보며 얼마나 위안이 되었던가. 뒤를 돌아보지만, 뒤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우울에서 해방되는 것임을 바다가 알려주지 않았던가. 저 먼바다에서 겨울 같은 봄바람이 부르르 떨면서 달려올 때, 마치 허공에 매달린 태양 빛이 하늘에서 내려주는 동아줄로 보여 붙들고 싶지 않았는가.
한때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추억이 내 삶을 무력하게 만들 리 없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러나 바스러진 추억은 더 이상 감미로울 수 없다. 추억은 기억이 지닌 능력을 상실하기에는 매우 얇은 종이 같은 것. 더 이상 잔인할 수 없도록 기억 회로를, 깊고 집요한 추억에 담긴 감정을 차단해야만 우울에서 해방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어렵다. 추억이라는 시간과 그 추억만이 지닌 경로가 망각으로 향하기를, 비슷비슷한 우울이 사라지기를 기도했는데…. 생각이 피로해진다.
“시간이 천천히 지나기를 바란다. 내게 유리한 이야기를 만드는 데 더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래야 한다. 불필요한 시간이어도 나를 피신하게 해 주니까. 그러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
시간은 얕고 흔들리는 감정이 감동으로 확대하는 예술적 순간을 발견하게 해 준다. 단순한 말로 전할 수 있는 추억이 거미줄처럼 엉켜버려 오히려 불확실해지는 상념이라면 바다에 뿌려야 한다. 대답에 따라 두 개로 나누어질 상황에서 오는 불안한 과거는 바다로 흘려보내야 한다. 핵심을 찌르는 증거가 있는데도 우물쭈물하며 해야 할 말을 삼켜야 했던 억울한 기억을 바다에 일러야 한다. 미미한 것이라고 축소하려는 의도가 두려움으로 각인되어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면 바다에 큰 소리로 말해야 한다. 앞선 기억과 가면 같은 과거와 딱딱하게 굳은 추억을 바다에 던져야 한다. 넘실대는 파도는 내가 뱉었던 악의 섞인 말을 흰 거품으로 만들 거니까.
추억을 부양하거나 추억과 싸우면서 사는 인생은 추억을 분석하고 조롱한다. 추억을 대조하고 비교하면서 새로운 추억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지만, 추억은 최면술 같은 암시 효과일 뿐이다. 추억을 재창조할 수 없는 무기력에 빠지면, 무기력에 맞서는 망각도 별 소용이 없다. 슬픈 소설을 읽고 난 후, 소설 주인공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이 마치 자기 삶을 애도하는 것처럼 착각할 때도 있지 않은가. 추억도 응축된 기억을 포장한 것이 아닌가, 피상적 모습만으로 지속되었던 이야기를 가능성이라고 믿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자각이 현실이 될 때, 깊은 바닷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추억을 내버려 둔다. 기억 속 과거가 소멸하는 과정이니까.
형태는 그대로 남아있지만, 정서가 녹아 있지만, 살아있는 생명처럼 느껴지지만, 닳아서 없어지고 우그러지고 바스러지고 부서지기를 바라는 추억이 있다. 입었던 옷 주머니에서 발견한 물건을 보고 깜짝 놀라는 것이 추억이다.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예감이 딱 들어맞는 것이 추억이다. 이처럼, 지나간 일을 돌이켜 기억하는 것이 추억이라면, 추억은 나들이에서 돌아온 기억이다. 추억은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약속한 것처럼 나타나는 기억이다. 즐거움과 웃음, 맑음과 빛에 가려진 그 무엇이 추억이라면, 그것은 로맨틱한 최면술이다.
무기력한 마음에 예리한 고통을 주는 추억을 바다에 던진다. 바다는 추억을 잘게 부순다. 의도한 이미지에 덧씌운 추억이 바다에서 자유롭게 흘러가기를, 아무 데로나 무한하게 흘러가기를, 지금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 흘러가기를, 행운이나 불운의 실마리가 되지 않고 마냥 흘러가기를.
눈앞에 펼쳐진 바다 앞에서 눈을 감고 바다를 그려 본다. 어둠 속에 세워두었던 추억이, 포용력을 상실한 추억이 물거품처럼 부서진다. 파도가 크레셴도와 데크레셴도로 다가왔다가 멀어진다. 바다는 뒤웅스러운 추억을 삼켜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