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공원에 해 목욕하려고 가을 햇살을 찾아 옹기종기 모여 있는 비둘기들. 하얀색, 검은색, 회색 그리고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아롱다롱한 비둘기들. 그런데 나무 의자 뒤편에 비둘기 한 마리가 눈은 깜빡거리는데 움직이지 않는다. 알을 품고 있나? 가만히 다가가 바라보는데 눈동자가 느리게 움직인다. 혹시 알을 품고 있다면 외부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공격성을 드러낼 수 있겠다 싶어 걷던 길을 걷는다. 그러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에 주변을 눈으로 훑는다. 아픈 건가?
공원 한 바퀴를 돌고 그 자리쯤에서 그 비둘기를 찾는다. 비둘기는 조금 움직였는지, 버려진 종이컵에 꼬리가 들어가 있는 형국으로 새근새근 자는 것처럼 보인다. 눈은 감겨 있고 움직이지 않는데, 숨은 쉬나?
십여 년 전, 아파트 베란다 외부 화분 받침대에 비둘기가 알을 낳았다. 알을 품고 있는 비둘기는 꼼짝하지 않았다. 초등학생이던 아이는 매일 비둘기를 관찰했다. 생명을 잉태하는 비둘기의 일과를 놓치지 않았다. 비둘기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비둘기의 자그마한 변화를 신기해하면서 함께했다. 그러다 보니 비둘기와 함께 사는 마음이었다. 비가 몹시 오는 날, 우산을 씌워 주며 잉태하는 시간을 공유했다. 드디어 새끼가 세상에 나왔다. 어느 날, 어미 비둘기와 새끼 비둘기는 다른 곳을 가버렸다. 한동안 떠나버린 비둘기를 기다렸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는 헤어짐을 경험하며 성장했다.
이처럼 비둘기는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는 새다. 젊은 날, 인천에 가게 되면 부러 자유공원으로 비둘기 떼를 보러 가곤 했다. 서울역 앞에서 무리를 이루는 비둘기를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던 시절. 비둘기는 아마도, 88 올림픽이 열리면서 더 많아졌을 것이다.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 주변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물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점점 늘어나는 비둘기 때문에 일상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한 아파트 입주민이 베란다에서 비둘기 먹이를 주는 아랫집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고 호소했다(국민일보, 2022. 11. 25)는 기사를 보았다. 환경부가 2009년 도심 집비둘기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했다는 기사와 동물보호단체의 반발로 무산된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에 관해 생각한다.
먹이를 찾아 모여든 비둘기의 배설물뿐만 아니라 비둘기 털과 소음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이웃과 분쟁이 일어나는 현상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이 기사를 보면서 지난날, 베란다에서 새끼를 낳고 떠난 비둘기를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이웃 분쟁이 되지 않고 한 마리 비둘기가 두 마리 되어 떠났으니. 어떤 아파트 단지는 에어컨 실외기 위에 비둘기 배설물 때문에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 아니라 원수가 되었다. 실외기를 초록색 그물망으로 칭칭 감은 아파트 단지를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비둘기가 오지 않을까,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자구책은 비둘기와의 전쟁이다. 비둘기를 보러 서울역이나 인천 자유공원을 찾았던 기억은 즐거운 추억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비둘기를 보며 즐거워했던 날들. 인간만이 알 수 있는 현대 사회의 비둘기 변천사를 비둘기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비둘기 눈동자가 빨간색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전이다. 아침 산책마다 공원에서 만나게 되는 비둘기를 걸음 멈추고 자세히 보았다. 떼를 지어 느긋하게 걸어 다니며 먹이를 찾는 비둘기는 급한 일이 전혀 없어 보였다. 가끔 몇 마리가 폴짝, 어딘가로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와 남아있는 비둘기 무리에 합류하는 것을 보면 슬그머니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비둘기는 사람을 피해야 할 이유가 없다. 사람이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이리라. 그들의 이동은 산책하는 사람들 발걸음과 리듬을 탄다. 마치, 사람과 강아지의 리듬 있는 발걸음처럼. 아, 비둘기는 인간에게 유해 동물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비둘기 분비물 때문에 인간이 갈등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빨간 눈동자가 더 빨개지는 것은 아닐까.
다음날, 공원을 걸으며 나무 의자 근처에서 보았던 비둘기를 찾아보았다.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그 자리를 찾았다. 종이컵은 비어있었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몇 걸음 옮겼을 때, 둥그런 비둘기 등이 보였다. 움직임이 없었다. 비둘기는 죽어 있었다. 종이컵으로부터 약 3미터쯤을 천천히 움직였을 거로 짐작하는 거리. 죽음으로 다다르는 길을 혼자서 외롭게 삶의 끝을 부여잡고 있었을 비둘기. 지나가는 사람들 발걸음과 이야기,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생의 마지막으로 향했을 비둘기. 몸을 움직이며 마음을 다하는 순간마다 해의 빛을 찾았을 한 생명의 소멸.
이제 너는 슬프지 않을 거야라고 날개를 퍼덕이며/아침이면 내 조그만 창으로 스며드는 햇살처럼 언제나 노래했어 노래했어/그 아름다운 나날들 햇빛을 쪼아 먹고살던/내 착한 비둘기는/나와 헤어져 그가 살던 곳으로 날아가/새털구름이 되었어/비둘기 안녕, 비둘기 안녕….
-「비둘기 안녕」 시인과 촌장, 하덕규 시 -
내일 공원에 나가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는 비둘기를 만나겠지만, 소멸한 한 생명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낙엽과 흙과 나뭇가지와 지렁이와 바쁘게 지나가는 쥐와 사람들 발걸음과 자동차 소리 등은 여전할 것이다.
일상의 소음과 해와 비와 점점 차가워지는 기온을 느끼다 사라진 비둘기는 더 이상 슬프지 않을까. 마른 나뭇잎 사이에서 배설물을 남기지 않고 죽은 비둘기는 하늘로 올라가 새털구름이 되었을까. 혹시, 빨간 비둘기 눈동자는 처리하지 않은 깊은 슬픔을 다시 한번 느끼며 소화하는 애도였을까. 애도는 눈동자가 붉어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