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춤

by 남쪽맑은물

‘교통사고 입원 중’

오늘도 가게 문이 닫혀 있다. 유리창에 붙어 있는 A4용지에 쓰인 안내문이, 매직으로 쓴 삐뚤빼뚤한 글씨체가 다급했던 상황을 말하는 듯하다. 안내 문구만으로 가게 문이 닫혀 있는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다. 며칠째 종이가 그대로 있는 것을 보니 심하게 다친 것 같다. 아마도 주인아저씨가 배달하다가 사고 났거나 아주머니가 닭을 튀기다 기름 사고가 있었는지 모른다.

‘입원 중’이라는 문구가 발길을 멈추게 하고 마음을 축축하게 한다. 많이 다쳤으면 어쩌나, 보험은 들어두었나, 혹시 들었던 보험마저 해약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저런 생각으로 이어질 때, 세상을 너무 불행하게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움찔한다. 그러다 그저 교통사고로 입원 중인 현실이 미궁처럼 끝이 없는 일이 아니기를 바란다. 짙어지고 검어지는 걱정이 거칠고 끔찍한 일이 아니기를 바라며 발길을 돌린다.


부부가 치킨 가게를 인수한 지는 일 년이 조금 넘었다. 대로를 끼고 있는 아파트단지에 있는 치킨집이다. 저녁 무렵이면 이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야외 원탁 테이블이 놓여 있는 곳으로. 사실, 실내에 테이블이 두 개 있는데 머물기에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다. 열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에서 서너 계단을 오르면 꽤 넓은 공간, 그곳에서 시원한 생맥주와 치킨을 즐기는 이들이 탁자와 의자를 채운다. 날씨가 추워지면 테이블과 의자는 사라진다.

언젠가 주인아저씨는 지금까지 쉬는 날 없이 가게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매달 어김없이 나가야 하는 임대료와 융자금 이자, 생활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열심히 일하면 쨍한 날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부인은 닭을 튀기고 남편은 배달한다. 자정이 넘어서도 테이블을 찾는 사람이 오면 피곤한 기색을 뒤로한 채 반긴다. 그 시간부터 손님들은 각각 제 말을 하며 맥주를 마신다. 언제 끝날지 모를 손님들 이야기가 길거리에서 윙윙거리고 있는 동안, 부부는 아직 끝나지 않고 흩어져 있는 하루의 남은 일들을 정리한다. 말이 말을 낳는 술 마시는 사람들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사람이 먹고사는 일은 돈을 버는 일이기도 하고 자존심이 지키는 일이기도 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일이기도 하다. 먹고사는 일이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은유를 불러온다. 결국 먹는 일은 정신과 육체가 함께 숨 쉬는 일이며, 정신의 밀도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하루 벌어 하루 살기가 빠듯하다는 현실을 다큐나 뉴스 등을 통해 짐작한다. 그런데 몸이라도 아프면 걱정이 태산이다. 프랜차이즈의 ‘갑과 을’의 불평등 관계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사연들이 충분한 이유이다. 여기저기서 말 못 하고 참고 있다가 발설한 사연들은 가난한 상인들의 눈물이다. 울면서 겨자를 먹어야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영세한 자영업자들이다. 매운맛을 보았기에 겁도 많다. 다시 도전하는 것이 먹고사는 일을 지켜 줄지가 의문이어서 몸과 마음이 오그라든다. 배경이 부실한 이들의 삶을 콕콕 찌른다.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열심히 가게를 열었던 주인은 강제로 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병원에 누워서도 손익계산을 하느라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 하루라도 빨리 가게로 돌아가 경제적으로 틀어지는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 작은 바람일지도 모를 일이다. 생맥주 나르고, 닭 튀기며 배달하는 일이 오히려 행복한 삶이라 생각하며 퇴원날짜만 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탈하게 먹고사는 일을 기도하며 자식들 잘 자라주기를 소망하고 있는지도.

익숙하게 가게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아직도 유리창에 붙어있는 용지를 바라본다. 많이 다치지 않았기를 기원하며 하루빨리 가게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그곳에서 튀긴 닭요리를 먹고 생맥주 마시며 이야기 나누고 싶은 보통 사람들이 주인 부부를 기다린다. 시원한 여름밤에 나누는 이야기가 길거리에 뒹구는 허룩한 삶이어도 좋다. 동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를 나누는 곳, 거리에 플라스틱 탁자와 의자가 있는 곳, 미래의 불투명한 장막을 바라보고 질펀한 삶을 나누는 곳에서 오늘도 치킨집 부부를 묵묵히 기다린다.

다시 열린 가게 문. 예상대로 아저씨는 오토바이 사고나 났었던 것. 안부 인사를 나누니 다리가 아파서 배달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이제 12시면 문을 닫으려고요. 우리가 다 가게에 있으니까 아이들 교육이 엉망이에요. 며칠 전 학교에서 연락이 왔거든요. 아이들에게 신경 써야겠어요. 아이들에게 부모가 필요한 시기에 너무 일만 하는 것 같아서요.”라고 말하는 아저씨 얼굴이 어둡다. 돈을 벌어야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데, 돈을 벌다 보면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부족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삶이 얼굴에서 읽힌다.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 듯이 툭, 툭 털어 버릴 수 없는 삶의 고뇌가 흐른다.


새로운 주인이 매장을 확장하고 리모델링한다. 그 후 십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아이들이 성장해서 주말이면 부모를 돕곤 했는데…, 가정의 안위와 평화가 노동의 축적으로 함께 지켜지기를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내일로 가는 길목에서 잠시, 멈추는 동안 빠르게 흐르는 세월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그 가게 앞을 지난다. 종종 앉아 있던 야외테이블과 의자가 있지만, 그냥 지나친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영화나 소설 속 장면 같이 그렇게 기억하고 싶은 모양이다. 부부의 투실한 마음과 웃지만 피곤한 얼굴, 기름 냄새나는 손과 잰 발걸음을. 웃어야 할 때 눈물이 나거나, 눈물이 날 때 웃음이 나는 노동의 물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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