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빨아버린 마법사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윤정은, 북로망스, 2023)

by 남쪽맑은물

빨래하기 좋아하는 엄마가 있다. 그래서 매일 빨래를 한다. 날씨가 좋은 날, 엄마는 팔을 걷어붙이고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빤다. 고양이도 빨고 우산도 빤다. 개도 닭도 심지어 소시지도 빨아 빨랫줄에 주렁주렁 넌다. 시계도 빨아 넌다. 어찌 이런 일이….

어느 날, 도깨비가 구름 타고 나타난다. 빨랫줄에 걸린 꾀죄죄한 도깨비를 본 엄마는 얼씨구나, 하고 도깨비도 빨아버린다. 얼굴이 깨끗해진 도깨비는 기분이 좋아져 구름을 타고 돌아간다. 날씨가 화창한 다음 날, 엄마가 또 빨래하는데 하늘에 온통 도깨비들이다. 꼬질꼬질한 도깨비들이 몰려와서 하는 말, “어제처럼 해주세요.” 굵은 팔뚝에 힘을 주며 엄마는 “좋아, 나에게 맡겨.”라며 도깨비를 척척 빨아준다. 그림책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 (글, 그림 : 사토 와키코, 한림출판사) 이야기다.

책 표지에는 두 손으로 옷을 빨고 있는 엄마 얼굴이 든든하다. 땀방울이 흐르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 엄마는 어디에서 모든 것을 빨아버리는 힘이 생기는 것일까. 날씨가 좋은 날 빨래하는 엄마, 어떤 삶에서도 빠질 수 없는 빨래를 척척 해내는 엄마는 마법사다. 궂은 날이어도 쨍한 날이어도 늘어나는 것이, 개인과 개인 삶에서 누락시킬 수 없는 것이 빨랫감일 것이다. 그러니 빨래를 해결해 주는 이가 마법사가 아니면 무엇일까. 마음에서 시작해 몸을 움직여 웃음으로 되살아나는 삶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작품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는 잊고 싶은 상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픔, 너덜너덜해진 기억을 다리고 지워서 새로운 날이 되도록 도와주는 세탁소 이야기다. 그것이 마법사 지은이가 세탁소를 차리게 된 이유이다. 마음의 얼룩을 지우고 상처를 꿰매주고 구멍 난 마음을 말끔하게 메워주는 세탁소. 그런데 왜 하필이면 메리골드 바닷가 마을에 세탁소를 차렸을까. 세상 어디든 마음이 아프고 슬픈 사람이 있을 텐데 말이다.

지은이는 까만 바탕에 빨간 꽃이 새겨진 원피스를 입고 있다. 때에 따라 꽃 색깔이 달라진다. 허리까지 닿는 검고 구불구불한 긴 머리는 지은이도 마음 세탁소가 필요한 인물을 암시한다. 창백한 얼굴에 새겨진 심각한 표정이 이 마을에 온 이유를 대변한다 (35쪽). 이곳에서 타인과 자기 마음이 바닷물에 의해 깨끗해지기를 바라는 믿음 같은 것. 말라비틀어진 몸과 마음이 바닷바람에 살랑살랑해지기를 바라는 것. 자기에게 있는 신묘한 능력을 나쁜 일에 쓰지 않을 것임을 넓은 바다에서 고민하고 맹세하는 것.

선한 마법과 능력을 사용해 빛이 되는 존재가 되는 것은 특별한 일이고 이타적 행동이지만, 자기 능력을 조절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능력을 악용하거나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한다는 의미다. (21쪽) 개인에게 주어진 능력이 무엇인지를 무심하게 지나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골똘히 생각하는 것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대한 기대와 걱정은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는 어두운 느낌과 비슷하다. 달이 보이지 않고 별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하늘에서 어떤 징조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하며 은밀한 느낌을 기억하려는 시간은 차분하다. 눈을 감고 하나, 둘, 셋….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상실을 동반한 ‘불안’과 ‘공포’는 부지불식간에 들이닥친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후회는 소용이 없지만,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찌 후회하지 않는 인생이 있을까. 선택은 때때로 후회를 동반하지 않는가. 어떤 선택으로 원치 않는 길을 가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비슷한 후회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소중한 것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기만 해야 할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을 암흑 속에 남겨 둘 수는 없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지은이는 마법사다. 마음 아픈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노력이 필요하다. 절망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쓰는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지은이가 몇 번씩 태어난 이유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 동안 능력을 잃지 않은 것은 좋은 마법사가 되려고 고민했기 때문이다. 바닷가 마을에서 사는 삶이 몇 번 째인지 모른다. 지은이가 자꾸 태어나는 삶을 선택한 것도 아니다. 먼 옛날 헤어진 부모님을 언제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지은이도 세탁이 필요한 마음이 있기에 다른 이들의 아픈 마음에 공감한다. 그렇기에 타인의 불편한 마음을 세탁해 주기 위해 사람을 기다린다.

사랑했던 기억을 지우고 싶다는 연희와 더 이상 살아갈 의미를 찾을 수 없어 마음이 욱신거리는 재하, 온라인상에서 거짓말 같은 화려한 삶을 사는 은별과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해인은 '우리 분식집' 아주머니와 같은 다정한 이웃이다. 분식집에서 김밥을 먹으며 그들은 마음 세탁소를 찾아가 자기 아픈 삶을 해체한다. 그들은 까발려진 고통과 아픔이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님을, 각박한 세상에서 사는 일이 지겨울지라도 살아 있는 한 영원한 어둠도 빛도 없음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마음이 아프면 꺼내서 얼룩을 지우고 햇볕에 널어 잘 말리면 돼. 깨끗하게 마른 마음으로 편안해질 거야. ”(54쪽)라는 생각이 마치 주문처럼 마법이 펼쳐진다.

‘모든 얼룩 지워 드립니다. 명품 드라이클리닝. 최신 기계 설비 완비’의 마음 세탁소를 찾아오는 사람들. 공기 같은 존재가 되어 편안해진다. 그렇다면 마음에 있는 상처와 아픔으로 물든 흔적이 지워진다는 것은 없어진다는 것일까. 만약 지워진 얼룩이 꽃으로 변한다면, 그 꽃이 모여 꽃 같은 나날이 되어 돌아온다면, 얼룩은 윤회의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음에 있는 얼룩이 지워지면서 흘리는 환희의 눈물은 꽃이 되고 빛이 되어 하늘로 날아간다면 얼룩은 빛의 씨앗이 아닐까.

그렇다면 얼룩이 나쁘기만 한 것일까. 오랫동안 자기를 괴롭게 만드는 기억이 사라져야만 정말 행복할까. 기억을 억지로 잊어야만 하는 것일까. 억지로 잊히지 않는 기억을 망원경으로 들여다본다면, 더욱 세밀하게 내부를 파헤치게 된다면 그리 나쁜 기억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맑게 보이는 바다처럼, 얼룩진 기억 너머에 꽃 같은 날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픔과 상처가 얼룩쯤이 되어 별일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림책에 등장하는 엄마와 도깨비처럼, 빨아야 하는 옷이 있다면 빨아야 하는 마음도 있다. 마음은 생각이니 빨래가 필요한 생각이 있다면 빨래해야 한다. 빨래를 해주겠다고 나서는 엄마처럼, 세상에는 마법 같은 존재가 있다. 언제든지 든든한 팔을 걷어붙이고 ‘문제없어!’라며 마음만으로도 충분한 존재. 누구나 빨래해 주는 엄마 같은 마법사가 될 수 있고 누구에게나 빨래를 맡기는 얼룩진 존재가 될 수 있다.

더러운 마음을 빨고 말리는 마음 공간이 필요하며 마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끔은 다림질도 필요하다. 구름 타고 왔던 도깨비가 다른 도깨비를 데리고 다시 왔던 것처럼,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는 언제나 문이 열려 있다. 몇 번이고 와서 세탁해도 가능한 곳으로 말이다. 빨래를 할 수 있다는 안도감은 마법의 신호다.

마음을 세탁할 수 있다면, 어떤 마음을 어떻게 세탁하고 싶은가. 지금의 나로 살아가면서 과거의 나를 생각하는 것은 좀 더 나은 미래의 나를 상상하는 일이 아닐까. 그러다 보면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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