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클레이하우스, 2022)
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작품을 처음 읽고는 기시감이 있었다. 분명 내가 쓴 글이 아님에도 내가 쓴 것 같은 느낌. 아마도 작가 생각과 내 생각이 비슷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많아서 그렇지 싶었다. 닮았다거나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매개체는 당연히 책으로 이루어진 공간 때문이다. 더구나 휴남동 서가에서 만나게 된 책, 예를 들면, 『호밀밭의 파수꾼』, 『에니미와 이저벨』,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대한 감상도 어찌나 비슷하던지.
이미 경험한 것처럼 친숙한 책이 가득한 공간에 마치 내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내가 쓴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수밖에. 더구나 커피 향 가득한 책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흠쾌했다. 내 이야기 같은 작품에서 친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마치 혼자 있는 공간에서 혼자임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아이러니 같은 것이 아닐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책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책을 좋아하지 않아도 공간이 주는 안온함에서 사람을 만나고 싶어 책방을 찾는다. 공간이 사람이 된다고 했던가. 여전히 내 의식 한 귀퉁이에서 숨을 쉬고 있는 책과 사람의 친절함을 느끼고 싶은 공간이 있으면 발길이 머문다. 아마도 휴남동 서점 같은 공간이라면 꼭 내 이야기를 풀어놓아도 마냥 좋다는 믿음이 있다.
“이제 그녀가 어느 공간을 좋아한다는 건 이런 의미가 되었다. 몸이 그 공간을 긍정하는가. 그 공간에선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가. 이곳, 이 서점이, 영주에겐 그런 공간이다.” (10쪽)
자기에게 맞는 옷을 입고 자기에게 맞는 음식을 먹고 자기에게 맞는 집에 사는 것이 의식주의 진정한 해결처럼 느껴진다. 그중에서 자기에게 맞지 않는 옷은 안 입으면 되고 음식도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공간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다. 아마도 비용 문제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공간은 자본과 가장 친숙한 부동산이니까.
공간은 그곳을 구성하는 사물과 사람 위치나 움직임에 따라 다르다. 공간에 떠도는 냄새나 소리도 매우 중요한 선택 요소다. 일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좁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 특성을 생각하면 공간에 대한 취향이 중요해진 것은 당연한 문화 같다. 그래서 카페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 많은 사람이 원하는 취향을 고려한 카페 문화가 형성되고 발달한다. 그중 북카페는 책이 있는 공간을 원하는 이들이 모인다.
책방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실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생각으로 그쳤기에 아쉬운 마음이 항상 있다. 그리고 지금도 여진 같은 아련한 마음이 생각 귀퉁이에서 서성이고 있다. 그러다 찾은 방법이 책방 여행이다. 치열한 삶을 잠시 미루고 일상을 다독이는 여행을 하게 되면서 여행지에 있는 책방에 들러 책 향에 취하는 것이 빠질 수 없는 일정으로 우선시된다. 그 이유는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공간에 대한 열망이고 나를 소외시키지 않고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곳을 찾는 일이기에 꽤 적극적이다.
그곳에 가면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같은 공간에 있는 것으로도 해 질 녘 노을을 말없이 바라보는 시선이나 공원에서 만난 비둘기 움직임을 따라가는 시선을 공유하는 마음 같은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좁은 길목에서 마주친 두근거림처럼, 책을 고르며 책방 서가를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이 가슴을 뛰게 한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 뒷모습 같아 그대로 존재하는 것만으로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과 비슷하다.
집에도 책이 있는 공간이 있지만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다른 도시, 다른 환경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방을 찾아 나서면 그 여정이 기쁨이고 설렘이다. 물론 내가 사는 도시에 있는 책방에서 얻는 기쁨을 포함해서 말이다. 점점 있어야 할 자리를 잃어가는 책방을, 어느 골목에서 사라질지 모를 책방을 뜨거운 심장으로 찾아간다. 모든 이에게 공평한 책이 있는 공간은 편안한 휴식이 되고 위안이 된다.
언젠가, EBS 방송에서‘발견의 기쁨, 동네 책방’ 프로그램이 있었다. 작가가 전국 작은 책방을 다니며 책방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방송을 빠지지 않고 시청했다. 단순히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 공간에서 만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익숙한 듯, 낯선 풍경으로 다가왔다. 특히 주민들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유용한 공간은 훌륭했다. 이 익숙한 풍경은 나의 유년 시절을 불러온다. 오 남매가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작은 공간에 떠돌던 따뜻한 감성들. 이런 느낌이 점점 낯설어지는 이유는 그런 장소가 점점 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오 남매는 각자의 공간에서 그 공간에 어울리는 사람과 살고 있지만, 그 시절 그 모습은 흘러갔고 추억이 되었다.
얼굴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개인적 차이가 있겠지만 사람 만나는 목적이 확실하지 않으면 혼자 지내는 일이 익숙한 시대다. 함께 하는 시간이 희미하고 맹숭맹숭하면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경로와 매체가 무궁무진한 시대 특성이 한몫하지 싶다. 손에 들린 스마트폰만으로도 혼자서 얼마든지 시간과 공간을 활강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이 서먹해지는 현상이 점점 많아진다.
통화하는 것도 불편해하는 세상이지 않은가. 목소리에 담긴 의미보다 문자나 이모티콘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익숙한 시대다. 그것으로 감정을 나누는데 불편하지 않다. 길을 묻는 일도, 날씨를 가늠하는 일도, 궁금한 이야기를 찾는 일도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얼마든지 혼자서 가능하다. ‘병은 널리 알려야 한다’는 선인들의 지혜가 무용하게 되어버렸다. 검색하면 되니까. 다양한 표현 방법이 다채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원동력이지만 그 힘으로 만들어진 문화를 소통하는 데는 왁자지껄한 요란함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이 책은 직장을 다니다 퇴직하고 결혼생활을 정리하니 아직 살아보지 않은 삶의 방식이 궁금해진 인물, 영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딱 이 년만 해보자, 생각하고 휴남동에서 서점을 시작한다. 영주는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큰 추동력이다. 사실, 책방을 하고 싶은 이유가 그렇게 구구절절 많지 않다. 그저 침묵하는 시간과 대화하는 시간이 자유자재로 변환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목적의식 없는 시간이랄까. 한 공간에 누군가와 함께 있지만, 말할 필요성을 느끼고 실천해야 하는 부담감이 없는 상태, 고요함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는 과정, 상대방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말 없음, 상대방에게 적절한 말을 주고받기 위해 일부러 말을 만들어내야 하는 부담감 없는 상태가 가능한 공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것이 책방이라고, 진정으로 쉬고 싶으니까 쉬게 되는 것이 가능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을 실행할 수 있음이 즐겁다.
취업 준비 시간이 길어져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취업 준비생 민준, 회사에 헌신했지만 정규직의 희망은 그저 희망 사항에 그쳐 힘이 빠진 계약직원 정서, 사춘기 시기를 지나는 자식 적정에 한숨이 한없이 나오는 주부 민철 엄마, 무기력증을 온몸에 달고 학교에 끌고 다니는 고등학생 민철, 직장 다니면서 매일 글을 써 또 하나의 직업이 된 작가, 커피 로스팅 전문가이자 영주의 동반자 같은 지미 이야기는 내가 사는 옆집이나 앞집, 윗집이나 아랫집 이야기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이 흔하디 흔한 것 같은 이야기가 상당히 독립적이면서 존엄성을 가진 일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개인 역사가 이루어지는 순간의 기록임을. 마치 흔하디 흔한 공기지만 더없이 귀한 공기를 마시는 것을 모르지 않는 것처럼.
다양한 형태의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가 서점이라는 공간을 통해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 경로를 관통한다. 표피적 삶이 지겨우면 벗어던지면 되지만, 그다음이 불안해서 망설여지지 않던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겼던 일이 직업이 되면 좋은데 정말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마냥 신나서 하는 일이 돈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신나는 일이 자본에 종속되어 노동 시장에서 허우적대면 침울해진다. 마냥 신나는 일도 주저하게 되는 일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점점 진지해지는 세상살이가 무서워지기 시작하면 심각해진다.
그런데 돈도 되지 않는 일에 매달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소멸하는 것은 아닌가, 과연 이것이 직업으로서 가치가 있나. 불안과 두려움은 살얼음판을 걷게 되고 어떤 대답도 만날 수 없음을 인지할 때 괜찮은 이유를 찾게 된다. 얼음판에서 비틀거리는 존재를 지탱하게 할 이유를 미리 준비하지 않은 자기를 탓하기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다 주문을 건다. ‘자, 제정신을 유지하자’‘어떻게?’
작가는 휴(休)가 들어가는 명칭을 꼭 사용하고 싶었단다. 쉴 수 있는 곳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됐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이라고.
“이 작품의 인물들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크게 티는 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 (362쪽)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나들이 같은 작품이다. 잘 짜인 각본에 의해 만들어지는 영화가 아니다. 처음부터 ‘잘’, 은 없으니까. 환경에 따라 수정하면서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삶도 그렇다고 이야기한다. 휴남동 서점이 나의 책방이라 우겨도 좋을 듯하다. 앞으로 어떤 책방으로 만들어갈까, 어떤 휴식처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하는 나.
책방을 찾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