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최은영, 문학동네, 2021)
최은영의 작품, 『밝은 밤』의 화자, 지선은 삼십 이세의 여성이다. 지선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강원도의 작은 마을, 회령으로 이사 가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근무할 연구소가 있는 회령은 지선의 할머니와 엄마, 고조할머니의 서사가 숨 쉬는 곳이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할머니와의 이야기는 백여 년을 아우르는 역사의 숨결로 펼쳐진다. 긴 시간을 관통하면서 개인의 서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팔순을 바라보는 지선의 할머니가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와 자리 잡은 곳이 회령이다. 회령은 속초 아바이 마을 형성과정처럼 할머니도 할머니 가족과 함께 전쟁을 피해 도착한 곳이다. 회령은 할머니가 지선 엄마를 낳은 곳이니 지선 엄마의 고향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지선을 만나면서 지난 시절의 그리움을 회억한다. 그런데 할머니와 지선 엄마(할머니의 딸), 지선과 지선 엄마는 서먹서먹한 관계다. 왜 그럴까. 할머니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그 이유를 촉촉하게 만난다.
할머니가 지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옛날이야기 같은 역사드라마 같다. 그러다 큰 숨을 쉬기 위해 멈추었다 그다음 이야기로 이어진다. 입 속에 갈피갈피 쌓아둔 지난한 개인의 이야기가 지난한 역사의 숨결이기에 그 숨결에서 슬픔을 만난다. 할머니는 마음에 품고 살아왔던 이야기를 손녀딸에게 하면서 딸(지선 엄마)을 향한 미안한 마음을 토로한다. 할머니가 미안해하는 마음이 할머니만이 표현할 수 있는 슬픈 마음의 기호다. 슬픔을 함께 슬퍼하지 못했기에 모녀 관계의 소원함은 소통의 부재로 이어졌고 그러다 어긋났다. 어긋남이 손녀와 할머니의 긴 대화로 맞추어진다. ‘그래서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 상황이었어요? 전혀 몰랐던 일이에요.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지요. 엉뚱한 생각을 했었네요, 등등’ 미안함과 고마움, 서운함과 감사함, 창피함과 편안함으로 재봉사의 바느질 같은 이음이 일어난다.
지선은 이혼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로 회령에 온다. 밥을 먹는 것도, 걷는 것도, 사람 만나는 것도 힘이 든다. 그럼에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개인사(여기서는 이혼녀)가 개인의 능력을 폄하하는 잣대로 사용되는 것을 극도로 조심한다. 세상은 어려움과 아픔이 약점으로 되돌아와 아픔과 어려움이 가중되는 경우를 모르지 않는 지선이다. 경쟁사회의 산물이려니, 생각하며 무시하려 해도 신경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례를 보아왔기에 무신경할 수 없는 현실이 갈수록 불편해진다. 전쟁터 같은 사회생활의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그러다가 병이 난다.
안타깝게도 지선은 업무 실수를 한다. 업무 실수의 원인이 마치 ‘이혼자’의 불안한 감정처리인 것처럼 능력을 헐뜯는 동료 시선이 와글와글하다.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아이의 실수가 부모 없는 아이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모가 일찍 죽은 것이 아이 탓인가. 백정의 딸로 태어난 것이 백정의 탓인가, 딸의 탓인가. 사람의 의지로 할 수 없는 요소를 원인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의 말, 말, 말….
할머니와의 만남은 이야기로 이어지고 그 이어짐은 마음을 나누는 통로가 된다. 마음을 나누니 저절로 위로되고 치유된다. 지선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슬퍼한다. 할머니의 아픔을, 엄마의 상처를. 엄마는 전쟁 중, 중혼의 피해자인 할머니의 딸로서 살아가기에 얼마나 팍팍했을까. 아버지 없는 아이라는 굴레를 쓰고 살아가기가 얼마나 고단했을까. 엄마의 아픔이 지선에게 이어지고 지선의 아픔이 할머니에게 이어지며 알았던 사실을, 새로 알게 된 사실을 슬퍼한다. 그리고 자기 슬픔에 빠진다. 슬픔은 자기 연민이 아니던가. 자기를 애지중지 쓰다듬지 않고서 어찌 타인을 포옹하겠는가.
지선은 엄마와의 관계가 소원했다. 할머니와의 관계도 소원했던 엄마.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된다. 아픔과 슬픔이 유전처럼 이어지는 가족의 끈은 곡선과 직선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빙빙 돌기도 한다. 그렇지만 공감하는 지점에서 화해한다. 그것은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것. 그리고 사과하는 것.
-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진심으로 사과받지 못한 사람들의 나라가 있을 것이다.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야. 그건 진심 어린 사과만을 바랄 뿐이다. (밝은 밤, 252쪽)
차이를 차별과 혼동해서 사과해야 할 일이 많은 곳이 세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실수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이 상처를 준다. 차별은 큰 실수다. 여자라서, 백정의 딸이어서, 이혼한 사람이어서 차별받았던 아픔이 슬픔이 되고 상처가 된다. 그 상처가 시대의 유산처럼 계속 이어진다면, 특히 그 원인이 차별 때문이라면 이제는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
차별하는 실수로 타인에게 무례를 범하는 일은 없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아차, 하고 그 실수가 생각났다면 만회할 시간을 가져 볼 일이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무례함으로 상처를 준 일이 생각난다면 사과할 일이다. 사과는 행동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 기분 나쁘니, 당신은 사과하셔야 합니다’가 아니라 자신을 통찰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용기이기에 그렇다. 강요에 의한 비굴한 행동이 아니라 진심을 표현하는 행동이기에 의미가 깊다.
몇 달의 시간이 지나고 지선과 할머니가 헤어지는 날, 지선은 회령에 올 때처럼 아프지 않다. 새로운 일터, 대전 연구소로 떠나지만, 할머니와의 기억이 앞으로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것을 안다. 패배감에 젖은 말들은 버리고 떠난다. 건강하게 짐을 챙겼고 할머니와 포옹했으며 앞으로 일어날 사랑과 이별을 기대한다. 그리고 다가오는 날들을 마주하려는 자신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