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옥

『지켜야 할 세계』(문경민, 다산책방, 2023)

by 남쪽맑은물


윤옥은 중등 국어 교사였다. 사범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에 있는 공립 교사로 임용되었으나 3년 차에 파면을 당했고 몇 년 뒤 복직했다. 고등학교에서 국어, 문학, 문법을 가르쳤다. 윤옥은 결혼하지 않았다. 관리직 승진도 준비하지 않았다. (9쪽) 윤옥은 해직 교사였고 노량진 학원가에서 학생을 가르친 적이 있다. 야학에서도 학생을 가르쳤다.

윤옥은 1965년생 동생, 지호가 있다. 윤옥과 8년을 살다가 헤어졌다. 그 후 50년이 지났다. 지호는 뇌병변장애가 있다. 혼자서 앉지도 못할 정도로 심각했다. 지호는 마루를 좋아했다. 지호가 마루에 있으면 평소와 다르게 “아, 아, 아”하는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무척 기분이 좋다는 행동이다. 윤옥과 엄마는 지호가 좋아하는 느낌을 표현하는 아, 소리를 좋아했다. (61쪽)

윤옥은 열 살 때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화약 사고로 죽었다. (61쪽) 그 뒤 산동네로 이사 온 뒤로 엄마는 방직공장에 다녔고 윤옥은 지호를 돌봤다. 그런데 윤옥은 지호를 돌보는 일이 기쁨이나 보람을 찾는 일이 아니었기에 싫었다. 특히 지호 끼니 챙기는 일이 가장 큰 일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상황이 싫었고 지긋지긋했다. 지호를 하성호 목사에게 입양 보낸 후, 윤옥은 학교에 다녔다.

윤옥은 결혼하지 않았는데 아들 상현이 있다. 상현은 수연의 아들이다. 수연은 윤옥이 신규 교사 시절 첫 학교에서 만난 학생이다. 학교 관례로 걷었던 ‘임원 학부모 회비’가 발단이었다. 임원 학부모 회비를 교사들에서 상납하는 지저분한 문화에 저항하는 선생과 희생자인 수연. 수연은 학부모 회비를 낼 형편이 되지 않아 임원을 포기했다. 수연은 학교 안에서 차별을 받았고 그 차별이 억울했다. 수연은 학교보다 민들레 야학당이 더 흥미로웠다. 야학 선생이었던 윤옥의 동창생 김정훈에게 성폭행을 당하기 전까지는. 상현은 생모인 수연의 사연을 전혀 모른다.

세월이 흐른 후, 윤옥은 하성호 목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호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호 머리에 북슬북슬한 두 손을 얹고 기도했던 목사가 보낸 편지에 있는 ‘기적의 집’ 주소를 찾아갔다. 그러나 걸걸한 목소리로 벙글벙글 웃으며 “지호 어머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호는 이제 제 아들입니다”라고 말하며 지호를 데려간 목사를 찾을 수 없었다. 지호도 만날 수 없었다. 장애인을 돌봐준다는 하성호 목사를 믿었지만, 목사는 장애인 부모에게서 받은 돈을 챙기고 사라지는 사기꾼이었다. 지호는 돌봄은 받지 못해, 차별과 폭행, 폭언과 멸시로 죽었다.

윤옥은 교사가 되고 싶어 좋은 성적으로 교육대학에 갔고 내후년이면 정년퇴임이다. 그런데 왜 버림받은 기분이 드는 것일까. 굴곡이 여러 번 있었어도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며 살았다는 자부심만큼은 분명했는데. (93쪽) 김정훈 교육감의 비리가 세상에 드러난 추정과 정황이 확인, 증언, 증거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정훈의 자택 금고에 쌓아둔 현금다발이 발견됐다. 공교육을 위해 거리 시위를 하던 젊은 날의 정훈은 어디 갔을까. 비리 수사 과정에서 정훈과 연루된 교장은 결국 자살했다. 10년 전, 윤옥과 함께 근무했던 성실하고 강직한 체육 선생이었는데.


문경민 작가의 작품 『지켜야 할 세계』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어떤 곳인가. 우리가 진정으로 지켜야 하는 세계가 있기는 한 것인가.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지켜야 하는 것인가. 그 세계를 지키면 숨쉬기가 좀 수월할까.

선을 가장한 허위의식과 가식성, 변종이 되어 악이 될지 모를 야만성이 시대의 일부가 된다. 가변성 확장이 선례가 되고 생경한 의지가 미래로 향할 때, 악이 따라간다. 미래가 겁이 난다. 야만스러운 괴물이 판치는 세상이 올까 봐 두렵다. 삶에 사리 사리 녹아드는 악성이 오랫동안 지속할까 봐 겁난다. 어딘가에 있는 선은 몸을 떤다. 괴물이 네활개 치는 세상이 되면 어쩌나, 괴물이 선을 잡아먹으면 어쩌나, 악이 악인지 모르고 악과 함께 춤추면서 환호하면 어쩌나. 선은 몸서리치며 울부짖는다. 그 소리에 화답하는 이가 있고 귀를 막는 이가 있다. 악은 적당하게 선과 타협하는 지점을 찾으려 감언이설을 늘어놓는다. 그 표정이 득의만만하다. 실패할 이유가 없다는 자만 가득한 몸짓은 세상을 향해 자꾸 악랄해진다. 선을 가장한 악은 일그러진 영웅 놀이를 즐긴다. 세상이 혼돈이다.

야만이 악이 되고 악이 불의를 퍼트리는 씨앗이라면, 그 씨앗이 선을 싹틀 수 없게 만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야만으로 확장하는 악을 막기 위해 선은 애를 쓰지만 속수무책일 때 무엇을 해야 할까. 인간에게 존재하는 야만성이 무질서와 혼란을 일으키는 악과 연대한 환호성을 지르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야만이 온 세상을 먹칠한다면 어떻게 하나. 선한 사람이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것을 어떻게 하나. 지금까지 감내하고 투쟁한 선의 흔적이 사라지고 지속할 힘을 잃어버린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할수록 슬프고 마음이 저리고 화가 난다.


윤옥은 교사로서 어떤 사람인가.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정윤옥에게 그의 삶은 어떤 세계인가. 인간은 인간을 돌본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인간을 의지한다. 인간은 세상의 모든 불안으로부터 지키기에는 허점이 많다. 그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저마다 고군분투하다.


“너무 힘들어요.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죄송해요. 고마워요. 저도 살아볼게요. 죽어버리지 않을 거예요. 끝나지 않을 거예요. 이겨낼 거예요. 죽을 때까지 살아갈 거예요.” (242쪽) 수연이 윤옥에게 울면서 하는 말이다.

윤옥은 지난 삶을 돌아보며, 언젠가 찾아올 죽음 생각하며, 윤옥은 서서히 차오르는 적의를 느꼈다. (244쪽) 윤옥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지키려고 노력했으나 힘이 들었다. 동생 지호를 떠나보낸 그날을 생각할 때마다 몸서리 쳐진다. “누나, 안녕”하며 떠난 지호를 생각할 때마다 악한 인간을 떠올린다. 수연의 아들 상현이 윤옥의 아들로 성장한 것이 수연과 윤옥, 상현에게 힘이 되었을까. 상현이에게 자기 세계는 무엇일까. 그 세계를 지킬 힘이 있을까. 사기꾼 하성호를 대신해서 제주도에서 지호 같은 장애인들과 사는 엄마는 죄책감으로 움츠렸던 마음이 고개를 들어도 될까.

윤옥이 지켜야 할 세계는 너무 거대했다. 지킬 줄 알았다. 세상이 바뀌고 사람이 변하더라고 변하지 않는 것이 악이라면 희망이 없기에 지키고 싶었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지키고 싶은 세계가 있지 않은가.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죽고 싶어지니까. 윤옥은 존재와 공존하는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죽었다. 그의 죽음은 그의 삶을 정지시켰다. 그가 지키고 싶은 세계는 더 이상 악으로 변종할 이유가 사라졌다. 더 나빠질 이유가 없다. 존재할 이유가 사라졌으니.


한 인간을 가여운 괴물로 만드는 세상과 그 세상의 힘에 휘둘리는 인간의 유약함에 화가 났다. (144쪽) 화가 난 윤옥은 죽을 때까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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