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by 남쪽맑은물

신애(信愛)는 두렵다. 유치원생 아들을 유괴한 웅변학원장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들이 다니고 있는 학원 원장은 돈을 요구하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흐른다. 수화기 너머 그의 말이 매미소리처럼 점점 커져 귀가 터질 것 같다. 밀양은 남편이 살고 싶어 했던, 그러나 교통사고로 죽은 남편의 고향이다. 남편이 죽은 이후 아들과 함께 내려온 도시. 이 낯선 곳에서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신애. 영화 「밀양」의 주인공 신애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미하다.

최루탄 맞은 상태가 이럴까.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삶의 기본이라 생각했던 신애. 나를 믿고, 가족을 믿고, 친구를 믿고, 이웃을 믿으면서 살아왔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비절참절한 순간이 이런 순간이란 말인가. 생명을 담보로 돈을 요구하는 세상에 살고 있고 믿음을 돈과 맞바꿀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 무섭다.

신애는 종찬을 생각한다. 신애의 가게자리도 알아봐 주고, 아름아름 도움을 주는 자동차 수리공 종찬을. 절망의 순간, 마음에 들지 않지만 딱히 거리를 두어야 할 이유가 없는 종찬을. 신애는 종찬에게 발길을 향한다. 누군가가 필요하지만 생각나는 사람은 종찬뿐이다. 다행히 자동차 정비가게 유리창으로 종찬이 보인다. 종찬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장단에 흥을 얹고 음을 얹어 즐거운 모습을 보니 신애는 망설인다. 어쩌면 이렇게 깜깜한 밤에 가게 안은 대낮처럼 밝을까. 이렇게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저렇게 즐거울 수가 있을까.

유리창은 경계선이었구나. 종찬의 흥겨운 음악소리와 신애의 애끊는 신음소리는 다른 세계다. 종찬은 어두운 거리에 서 있는 만신창이의 신애를 절대로 볼 수 없다. 신애는 세상 밖으로 사랑과 믿음을 밀어버리고 발걸음을 돌린다.

믿을 수 없어서 확인하고 자세히 보는 일이 세상에서 필요할 때가 있다.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물이 유리창이다. 투명한 유리창으로 안에서 밖을, 밖에서 안을 볼 수 있으며 유리창을 통해 세상살이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한다. 집에도 유리창이 많아졌고, 거리에 즐비한 상점들도 상품을 잘 볼 수 있도록 깨끗하고 커다란 유리창이 많다. 사방을 유리창으로 멋 낸 고층빌딩은 뜨거운 태양빛을 반사하며 인간의 힘을 뽐낸다.

속 시원히 내부와 외부를 연결해 주는 유리창이 전혀 볼 수 없는 물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걸쭉한 침을 삼킨다. 소통을 위해 존재하는 유리창은 소통을 음침하게 방해하는 기능이 있음을 잘 알지 못한다. 태양빛이 사라지면, 인공적인 밝음이 어둠을 망각하게 하는데 탁월하다. 어두운 밤, 밝은 빛을 뿜어내는 유리창이 소통을 위해 믿을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잘 모른다. 와장창 깨지기 전까지는.

아픔과 슬픔으로 보게 되는 유리창, 그 창 너머로 보이는 밝은 불빛이 너무 선명해 뒷걸음칠 때가 있다. 어찌 그리 환하게 웃고 떠드는지. 다른 세계 같다. 삶의 고통을 이해할 거로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 세상이 너무 밝아 어둠 속에 있는 자기를 볼 수 없음으로. 어둠에서도 유리창 너머의 풍경을 자세히 보여주는 밝음은 아픔의 은유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나와 다른 모습이 이질감으로 다가오는 심리적 불평이어도 상관없다. 불평과 불만으로 뒤섞인 아우성은 상실감을 넘어선 억울한 심정이다. 유리창으로 구획된 두 공간은 극명하게 다른 세계가 된다. 웃음 뒤에 명확하지 않은 비웃음이 들리는 것처럼.

신애는 죄수를 용서하러 교도소로 간다. 생각보다 괜찮은 그의 얼굴을 보고 다행이라 생각한다. 아들을 잃은 아픔을 신의 사랑으로 극복해 나가는 신애. 힘들었지만 ‘용서’라는 낱말을 가슴에 담고 그를 본다. 비위가 상할 법도 하지만 아들을 죽인 나쁜 놈을 용서하러 온 신애. 피해자와 피의자 사이에 놓여있는 구공탄 같이 구멍 난 유리창. 그런데 투명한 유리창으로 보이는 죄수의 부숭부승한 얼굴이 평온하다. 목회자 같은 음성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한다. 유리창 구멍으로 흘려보내는 죄수의 목소리는 신애보다 더 차분하다. 죄수를 자세히 볼 수 있는 유리창을 통해 신애는 ‘용서’라는 정동(情動)으로 강타당한다. 교도소에서 자기보다 더 평안하게 살고 있는 살인자의 모습에서 죄수를 용서할 권리마저도 박탈당한 신애는 거칠어진 울음을 하늘로 토해 낸다.


체념, 냉소, 비관, 절박함을 다독인 믿음이 무너진 마음에 생긴 상처. 이 상처를 이겨내려는 자에게 힘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의 힘으로는 부족한 신의 자비와 사랑일 수 있겠지만, 자비와 사랑으로 새로운 사고의 물꼬를 트고 그 물길을 따라가 보려는 의지와 용기가 생기겠지만, 무너진 믿음을 다시 추스르려는 일이 쉽지 않기에 신을 의지하며 어두운 순간들을 떨쳐내겠지만, 다시 무너지는 믿음을 어찌 감당할까. 나와 다른 세계를 고스란히 다 보여주는 유리창은 내가 알던 세계가 아닐 때, 손상된 마음 세포가 재생능력을 잃는다. 유리창을 깨 보려 하지만 보기보다 어찌나 단단한지. 유리창에 부딪치고 튕겨져 나오는 난망한 탄식이 얼마나 선명하게 보이는지. 망각하지 못하는 고통의 되먹임이 또한 유리창이니.

상실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신애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눈동자가 흔들린다. 세상이 흔들린다. 죽은 아들 모습이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눈물에서 흔들린다. 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신의 식견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신의 말 따위에 귀 기울이기를 포기한다. 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그렇다면 ‘용서’는 누가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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