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奇蹟), 기적(汽笛)

by 남쪽맑은물

이것은 기적이야, 라며 조금은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도대체 어떤 일인지 궁금해 사람들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운다. 이야기의 흐름이나 말하는 모습은 평소와 차이가 있다. 익숙하지 않은, 절대로 연출할 수 없는 표정으로 잊을 수 없는 이야기로 초대한다. 천진하고 맑고 겉치레 없이 상기된 모습에서 친밀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면, 호기심과 친밀감이 섞인 마음으로 지루한 일상이 흥미로움으로 동화할 것이다.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가공하지 않은 이야기는 정수한 물을 마시는 청량함과 비슷한 느낌을 갖게 한다.

실제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을 일컬을 때 ‘기적’이라는 낱말을 쓴다. 그러나 매일이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일들이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일상이다. 매일 사람이 태어나고 죽고 울고 웃는 것처럼, 다행이라고 생각하거나 놀라울 정도로 감동이 일어나는 일을 기적이라고 한다. 이처럼, 기적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서 출발한다. 일종의 메티포가 가능한, 캐릭터가 이중, 삼중, 사중으로 얽힌 생각은 블랙홀처럼 여러 구획으로 나누어진 사실이 알 수 없는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그러다 나뉜 사실이 하나의 결과에 도달할 때, 스스로 놀라며 감동한다. 전혀 눈치챌 수 없는 토대 위에서 구성한 결과에 안도할 때, 기적이라는 낱말이 입에 맴맴 돈다.

예를 들면,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넘어졌는데 다친 데가 거의 없다거나, 아슬아슬하게 버스를 탔지만, 그날따라 교통이 원활해서 늦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했거나, 낯선 도시에서 무엇을 먹을까 망설이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누군가는 기적이라고 말한다. 기적은 바라거나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지만, 감사하다는 표현이기도 하고,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며 다행이라고 말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만족스러운 상황에 대한 감탄이랄까.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I wish)」에서 여섯 명의 아이들이 등장한다. 이 아이들은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어디론가 향한다. 기차를 찾아가는 것이다. 특히 양방향으로 기차가 서로 스치는 순간을 볼 수 있는 장소다. 그곳에서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너무나도 순수한 마음이 그들의 발길을 움직이게 한다. 각자의 소원을 가지고 목적지에 도착한 그들은 두 기차가 스치며 기적이 울리는 순간 동시에 목청껏 외친다. 기적소리에 여섯 명이 외치는 소원이 더해지면서 세상은 떠들썩해진다.

“그림을 잘 그리게 해 주세요.”
“배우가 되게 해 주세요.”
“아빠가 파친코에 가지 않게 해 주세요.”
“죽은 강아지가 살아나게 해 주세요.”
“아빠가 성공하게 해 주세요
“……,……,……,……”


그런데 이상하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는 소년이 있다. 소년은 소리도 치지 않고 소원을 빌지도 않는다. 이 여정을 그토록 고대하며 계획했던 소년인데 왜, 하필, 그때 소원을 빌지 않았을까.

소년은 엄마와 함께 살고 있지만,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아빠와는 떨어져 살고 있다. 네 명이 한 지붕에서 같이 살고 싶은 소원을 침묵으로 남겨 놓은 것인데, 소년은 ‘세계를 위해 소원을 남겨 두었다’ 며 동생에게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소원을 남겨둔 이유가 세계를 위해서라니. 소년이 소원하는 세계란 무엇일까. 혹시 기적이 일어나는 미래라는 것일까. 입 속에 다물다물 모여있는 소원이 다가오는 날에 대한 기대일까.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소년의 침묵은 형식을 갖춘 관심보다는 형식이 자리할 수 없는 순수한 상태의 외부와 내부의 혼재에서 포착한 목격자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을 직접 눈으로, 마음으로 보는 것.

동생은 소원을 바꿔 말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동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왜 그랬을까. 마음에 남겨둔 소원을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싶었던 것일까. 동생은 기적이라는 현상 밑자락에 깔려 있는 맥락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기적은 매우 지적인 사유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적은 재미없는 농담처럼, 빈약한 계획처럼, 서툰 거짓말처럼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기에 그저 자기의 생생한 감정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만 있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소년이 말하지 않는 소원과 동생이 바꿔버린 소원은 세상에서 절대로 위협을 느낄 수 없는 순수한 영역이 아닐까. 아이들이 간직한 세계는 아이들이 성장하는 세계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어른이 되는 과정이 기적이며, 아무도 몰랐던 기적 같은 일이 무시로 일어나는 것이 삶이다. 아이들은 가치관의 진화를 이루며 가속화한 시간 개념을 알아차리고 세계의 무거운 측면을 목도하면서 상상 속의 세계에 대한 발상을 멈추지 않는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끊임없이 놀이가 이어지는 세계에서 연상되는 것들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아이들은 기적에 푹 빠져 지내는 생명체다.

어린이 시선과 맞닿은 기적은 그 의미가 순수함으로도 충분하기에 사뭇 철학적이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배우가 되는 것도, 죽은 강아지가 다시 살아나는 것도 아이들에게 소원이다. 그러나 다시 살아 돌아온 귀신이라면 모를까, 죽은 강아지가 다시 살아날 수는 없지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될 수도, 배우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니 기적일 수밖에. 마음으로 원하는 일이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 꿈틀거리니 것이니 말이다. 또한 소원하는 일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도 기적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리라.

가끔, 삶이 생소해 보이는 순간이 있다면 기적이 움트는 중인지도 모른다. 주위에 머물고 있는 사람과 사물의 생소함이 진짜로 우연히 마주칠 기적의 순간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생명의 천성을 거스르면서 일어나는 현상은 기적일 리가 없다. 기적은 선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와 아주 가깝다. 지금 어디선가 태어나는 생명의 울음이 기적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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