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후기에 들어서자 우리는 시부모님께 뱃속 아이의 장애를 알리기로 결정했다. 시댁에는 첫 아이였다. 시부모님 모두 복덩이가 찾아왔다며 행복해하고 계셨다. 결심은 했지만 남편은 입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말씀을 드려야 할 시간인데 여전히 망설이는 얼굴이었다.
"어머니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나의 단호한 눈짓에 남편이 어머님 앞에서 어렵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아이가 장애가 있다고. 다운증후군이라고.
이야기를 들으며 잔잔히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님의 첫마디는 "새아가, 네 탓이 아니야"였다.
나는 살짝 당황했다. 아이의 장애는 당연히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머님의 말씀에 크게 감동했다. 나를 보호하려는 어머님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불행의 책임을 엄마인 나에게 돌릴 타인에게서 그리고 내 잘못이라며 스스로를 상처 낼지 모르는 나에게서 보호해 주려 하신 것이다.
첫째가 태어나고 모유수유를 해 보려고 애썼다. 아이가 젖을 잘 빨지 못했다. 나도 출산 후 입맛을 잃어 잘 먹지 못했다. 자연히 젖이 말라갔는데 이 것을 알지 못했다. 태어난 지 3개월이 되면 출산한 몸무게의 두 배가 된다던데 첫째는 1.5킬로 정도만 늘었다. 소아과에서 젖이 마른 것 같으니 분유만 먹이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젖병을 세차게 빠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눈물을 떨궜다. 엄마가 무지하여 아기를 배곯게 했다는 생각에 뱃속이 뜨겁게 녹아내리는 듯했다.
육아휴직을 내고 11개월 동안 집에서 아이를 돌보았던 남편이 회사에 복귀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양가가 모두 시골에 있어 육아도움을 받을 수 없는 육아 독립군이다. 둘 중 하나가 퇴사하고 첫째를 돌볼 것인가 고민했으나 경제적인 면을 고려해 그러지 않기로 했다. 집에서 보육하는 2년 동안 아이는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잘 커주었다. 어린이집에 가서도 잘 지낼 것 같았다. 3월부터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치료실에는 활동지원사님을 구해 다니기로 했다.
4월 말 어린이집에 수족구가 돌았다. 열이 오르고 아이가 음식을 삼키지 못했다. 수족구가 끝나니 폐렴이 이어졌다. 다시 열이 오르고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호흡이 좋지 않아 응급실에 달려갔다. 입원을 하고 폐렴이 겨우 나아 퇴원을 하면 다시 감기에 걸려 폐렴으로 이어졌다. 아플 때마다 아이가 음식을 거부했다. 입원하면 열흘이 넘게 밥을 삼키지 못했다. TV 속 기아에 시달리는 아이들처럼 첫째의 등이 앙상해졌다. 아이를 잃는 줄만 알았다. 입 퇴원이 반복되고 아이는 결국 10월까지 어린이집을 다니지 못했다.
아이는 앓고 난 후 많이 달라졌다. 자폐 스펙트럼이란 걸 예상하지 못했기에 크게 아프고 나서 일시적으로 퇴행했다고 생각했다. 밤마다 아이의 재롱을 찍어 둔 과거 영상을 돌려보며 눈물을 머금었다. 내가 그때 퇴사를 안 해서, 어린이집에 종일 맡기고 치료를 줄여서, 잘 자라던 아이를 망친 것 같아 가슴이 미어졌다.
시간이 지나도 아이는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잘 하던 것들조차 잃어갔다. 자책이 마음에 촘촘히 쌓여갔다. 나 때문에 아이가 배를 곯았고 심하게 아팠고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된 것만 같아 괴로웠다.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내가 더 잘 돌보았다면 첫째가 이렇게까지 나빠지지는 않지 않았을까.
남편이 다른 선택을 했어도 항상 좋을 수는 없었을 것이고 우리는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몇 번이나 말해줬지만 완벽하게 수긍할 수가 없었다.
우연히 유투버 밀라논나 님과 배우 한예슬 님이 함께 한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다. 한예슬 님이 선생님께서 이탈리아에서 태어나셨다면 더 자유로운 인생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워할 때 밀라논나 님께서 이렇게 답했다. "난 if 라는 건 없어요." 순간, 나를 짓누르던 돌덩이가 사라졌다.
맞다. if 는 없다. '만약에 누가 그랬더라면' 이란 것은 실체가 없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결국 지나간 것이다.
'만약에 내가 달리 선택했더라면' 란 생각으로 스스로를 탓하며 괴롭혀 왔다. 그것은 내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할 뿐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매번 최선을 택한다. 아쉽게도 최고의 선택은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고 부모가 과거의 선택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상처 낸다면 가족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놓쳤다고 생각한 if 를 헤아리며 아이와 나의 현재를 연민해 왔었지만 이제 그만두기로 했다. 시어머님의 말씀이 옳았다. 내 탓이 아니다. 인생에 닥치는 일마다 탓을 할 필요가 없다. 과거는 과거일 뿐. 뒤를 돌아보느라 오늘을 마주하는 것을 놓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