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한사랑 Oct 31. 2020

이제 배우면 돼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부모의 역할

첫째가 여섯 살이 되면서 초등학교 입학이 고민이 되어 잠을 못 이뤘다. 장애가 있다지만 너무 아무것도 못하는 여섯살이다.

이대로 학교에 입학해도 되는걸까? 일곱 살이 되면 좀 좋아지려나? 미래의 일을 두고 고민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불안했다


우리 아이는 기저귀를 떼지 못했다. 매년 여름 기저귀를 떼려고 시도하다가 아이가 생리현상을 참아 결국 응급실에 가면서 실패로 끝난다. 초조한 엄마가 준비가 되지 않은 아이를 괴롭히는 꼴이다.

숟가락과 포크 사용은 6년째 가르치고 있다. 꼭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연습을 시작하지만 쉽사리 완성이 되지 않는다. 오래도록 가르치고 가르쳐야 조금 익힐 뿐이다.

식판을 들고 서서 기다리는 것 역시 할 수 없다. 일곱 살이 된 지금 작은 주머니를 팔에 걸어 떨어뜨리지 않고 2미터를 걸어가는 것을 연습하고 있다.

착석은 어떤가. 아이가 책상에 앉아서 할 수 있는 활동이 거의 없다. 펜을 주면 종이에 끄적이기보다는 공중에 흔드는 시간이 더 길다. 입에 넣어 질겅질겅 씹기도 한다. 이런 상태에서 착석 유지를 바라기는 어려운 것이다.


아이가 무사히 초등학생이 될 수 있을까.


첫째가 다니는 병설유치원의 특수 선생님께서 특수학교 입학을 추천했다.

유치원 통합학급에서 나름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해 초등학교도 일반학교의 통합학급에 입학하려 했는데 당황스러웠다. 나만 내 아이의 상황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사는 구엔 특수학교가 없다. 타 구에 있지만 가장 가까운 특수학교에 입학원서를 내기로 했다. 초등학교 1학년은 두 학급, 총 12명을 뽑는다고 했다.

그 12명 중에 타 구에서 온 우리 아이까지 들어갈 수 있을까? 입학상담을 하려고 지원하려는 특수학교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선생님, 저희 아이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제가 열심히 가르쳤는데 잘 안되었어요. 죄송해요.

우리 아이도 학교에 다닐 수 있을까요? 만약에 입학하게 되면 우리 아이가 잘 생활할 수 있을까요?"

나도 모르게 처음 통화하는 선생님께 애원을 하고 있었다.


생님은 몹시 당황하여 나를 위로해 주었다. 죄송할 일이 아니라고. 어렵지만 잘 키워오신 거라고. 다른 친구들도 잘 생활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입학 신청하시라고.

아이가 못하는 것을 헤아리다 보니 엄마는 죄인이 된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밖에 못 키웠을까. 아이도 나도 어쩌다 이렇힘들게 되었을까.


어느 날 첫째가 지원한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는 중학생 언니와 함께 밥을 먹게 되었다.

"언니가 우리 첫째 선배님이 될지도 몰라. 언니가 다니는 학교에 입학 지원하고 결과 기다리고 있어."

언니 눈이 똥그래진다. "아! 나 우리 학교 버스 1호차 타고 다니는데 만날 수도 있겠네요?"

"그래? 그럼 우리 첫째 보면 첫째야 안녕! 하고 인사해줘. 그런데 우리 첫째가 아직 안녕 인사를 못 해서 언니가 인사해도 안 받아줄지도 몰라. 이해해줘"

그러자 언니가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인사는 원래 학교에 가서 배우는 거예요."


이어 "저도 초등학교 1학년 때 안녕 못 했어요. 배워서 하게 된 거예요." 하며 웃는다.

중학생 언니가 엄마를 울렸다. 진정으로 위로가 되었다.

인사쯤 못 해도 뭐 어떤가. 이제 배우면 되는 것이다. 안녕은 원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배우는 거라니 지금 못해도 괜찮은 거였다. 못하는 게 많다고 당장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스스로 죄인이 되어 처참한 마음이었을까.


세상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100일 무렵부터 울면서 재활치료를 받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애써온 우리 아이이다. 자랑스럽게 여겨야 하는 게 마땅하다. 아이 수준에는 어려운 유치원 수업을 받으면서도 선생님 지시에 따라 친구들처럼 자리에 앉아 있으려 인내하는 아이에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

세상 어느 누구 못지않게 최선을 다해 살아온 아이인데 엄마가 첫째의 노력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큰 잘못을 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부족함을 아뢰며 죄인을 자처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초등학교 입학뿐일까. 살면서 누구나 겪는 두려운 첫 순간, 익숙하지 않아 겪는 어려움들이 우리에게 계속하여 올 것이다. 그리고 쉽지 않겠지만 첫째는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상황을 익히고 적응할 것이다.

엄마인 나는 그 곁에서 끊임없이 격려하고 큰 소리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응원하리라. 첫째가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마치는 순간까지 곁에서 지켜보며 열렬한 찬사를 보낼 것이다. 부모이자 함께 인생을 걸어 나가는 친구로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If 는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