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완화되면서 일상이 회복되었다. 생활에 변화가 생기면 적응하기까지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 요즘은 정신이 없다.
아침부터 둘째는 집 근처 어린이집에, 첫째는 마을버스를 타고 유치원에 등원시키느라 종종거린다. 점심을 먹고 하원한 첫째와 집에 도착하면 책상에 마주 보고 앉아 '매일 5분 숙제' 를 후다닥 마친다. 클레이를 굴리고 스티커를 떼고 색연필을 끄적이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준비를 소소하게 함께 하는 것이다. 책상을 빠져나온 첫째는 손을 흔들며 이 방 저 방을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오후 간식을 먹고 4시가 되면 집 근처 어린이집에 다니는 둘째를 데리러 간다. 고작 420미터 떨어진 곳인데 첫째와 함께 가면 왕복 30분은 걸린다. 손을 뿌리치고 뛰어가다가도 갑자기 길에 누워버리는 첫째를 오른손으로 단단히 잡아끌고 내 왼손을 잡은 둘째의 쏟아지는 이야기를 대충 받아주며 엘리베이터 없는 우리 집으로 향한다. 계단을 쉼 없이 올라 마침내 집에 도착하면 꼼짝 할 수가 없다.
엄마는 잠시 휴식을 선언한다. 그러나 온 힘을 다해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둘째는 이를 허가하지 않는다. 신발도 벗지 않은 채 현관에서 어린이집 가방부터 열어 어린이집에서 만든 자신의 창작물을 꺼내 엄마에게 보인다. 그러고는 같이 놀자며 어리광을 부리고 울고 떼를 쓰고 소리를 지른다.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밥을 먹이고 식탁을 치우고 겨우 둘째와 한 시간을 놀았다. 둘째는 혼자서도 곧잘 놀긴 하지만 그래도 엄마의 눈길이 오롯이 자신만 향하는 순간을 더욱 사랑하는 걸 안다. 평소 언니의 치료실 스케줄 때문에 늦게 하원 하는 데다 지친 엄마를 오래 기다린 아이에게 미안해서 오늘의 마지막 힘을 짜내어 둘째와 같이 놀았다.
엄마는 이제 그만 퇴근하고 싶다.
"이제 첫째도 치카치카하고 코 자자."
드디어 8시 반, 잘 준비를 한다. 둘째를 후딱 씻기고 내내 집안을 빙빙 돌며 배회하던 첫째의 손을 잡고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에 앉힌다. 나는 화장실 턱에 앉아 첫째를 마주 보고 아랫배를 눌러주면서 졸졸졸졸~ 쉬야 나와라 한다. 이제야 첫째의 눈을 차분히 바라보며 웃어주는구나 싶어 미안해진다. 변기에 앉아 내 웃는 눈을 가만히 바라보던 첫째가 갑자기 집게손가락을 들어 제 오른쪽 볼에 콕 찌른다.
"뽀뽀해"
첫째에게는 뽀뽀해달라 말한 적이 없었다. 둘째에게 가끔 내가 볼을 가까이 대며 뽀뽀해달라 하던 것을 본 걸까? 말을 거의 못 하는 첫째가, 심지어 원하는 것을 집게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조차 잘하지 못하는 녀석이 서툰 몸짓과 말로 제 뺨에 뽀뽀를 해 달라 요구한다.
순간 크게 놀랐지만 이 신비로운 순간을 놓칠까 얼른 입술을 첫째의 볼에 가져다 댄다. 쪼옥 소리에 아이가 웃는다.
"또 해" 아이의 다른 뺨에 쪼옥 입술을 대었다. 웃던 아이가 조금 있다가 두 손을 들어 제 양 볼을 콕 찍으며 "뽀뽀해" 말한다. 나는 아이의 양 볼을 잡고 번갈아가며 뽀뽀를 수 없이 하고 아이의 코를 비비고 이마를 맞대었다.
그래. 너도 기다리고 있었구나. 엄마가 너만 오롯이 바라보는 시간을. 그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엄마에게 이리 반가운 어리광을 부리는구나.
고마워. 너와 눈 한번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하루를 마무리하지 않게 해 줘서 정말 고맙다.
돌아온 일상에 적응하느라 엄마가 정신이 쏙 빠진 사이 아이가 혼자 씩씩하게 자랐다. 밤새 쉬지 않고 자라 마침내 아침, 고개를 내민 연둣빛 새싹처럼.
해 준 것 하나 없는 엄마는 아이가 만들어 내는 보석 같은 순간에 감격할 따름이다. 이 감동이 오래도록 내 마음에서 빛나기를. 지루하고 힘든 시간을 지날 때마다 힘을 낼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