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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사랑 Nov 24. 2020

화내기 그리고 용서하기

친구야 친구야 다음부턴 그러지 마라

나는 화를 잘 내지 못한다. 화가 나면 스스로 어색하고 불편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목소리가 높아지다가도 신경질적인 웃음이 나온다. 때론 내가 화가 났다는 것을 한참 후에 깨닫기도 한다.

나는 화를 내고 갈무리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리고 상대가 화를 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내게 화를 내는 게 아니라도 큰 소리가 나는 상황 자체가 싫기도 하다.


용서는 더 힘들다. 이해하고 이해하다가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웃으며 괜찮다 하고는 관계를 끊었다. 건강하지 않은 방법인 것 같긴 한데 맞지 않는 사람과는 오래가지 않는 것이 이롭다고 생각했다. 상대에게 너의 어떤 점이 나를 화나게 했다고 표현하면 상대가 수긍할 것 같지도 않고 바뀔 것 같지도 않고, 최악의 경우 싸움을 할 자신도 없기 때문이다.


다섯 살이 되니 둘째가 화를 내는 법을 터득했다. 울고 소리를 지르고 얼굴을 찌푸리고 이상한 표정을 만들어 자신이 화가 났다는 것을 표현했다. 아이의 앞에서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헤맸다.


첫째와 둘째가 함께 거실에서 놀다 보면 둘째가 정성 들여 쌓은 블록을 첫째가 주변을 서성이다가 쓰러뜨리고 만다. 첫째는 악의가 없다. 쌓은 블록을 반복해서 무너뜨리는 것이 첫째의 놀이 수준이다. 그러나 둘째에게는 심각한 방해이며 무례이다. 둘째는 째지는 목소리로 내게 자신의 화를 알린다. "엄마! 첫째가 내 블록을 무너뜨렸어!!" 둘째의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바로 소리 높여 울음을 터뜨리는 것으로 자신의 화를 알린다.


나는 아이에게 어떻게 화를 내고  어떻게 상대방을 용서하고 화해를 해야 할지 알려주어야 할 어른이다. 하지만 당황하여 횡설수설한다.

"둘째야. 첫째가 뭐야. 언니라고 해야지. 그리고 언니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블록은 다시 쌓으면 되지. 이게 그렇게 화를 낼 일이야?" 말을 하면서도 내가 틀린 답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알겠다.


둘째의 화는 정당하다. 화가 날 만한 상황에 화를 내었는데 참으라고만 하고 별 일 아닌 것으로 치부하면 얼마나 서러울까. 첫째도 억울하다. 동생하고 놀고 싶은데 내가 아는 놀이를 하면 동생이 자꾸 소리를 지르니까.

이게 반복되면 첫째와 둘째는 영원히 함께 놀 수 없을 것이다. 엄마는 좋은 중재자가 아니니 둘째는 첫째 가까이 가지 않을 테고 첫째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유치원 첫 학기, 첫째는 아이들에게 호감을 샀다. 다섯 살 아이들은 몸의 조절이 서툴러 뛰어놀다가 서로의 놀잇감을 건드려 다투는 경우가 빈번한데 첫째는 친구들이 있는 놀잇감 근처에 가지 않고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거나 혼자 있었기 때문이다. 인기가 없는 아기 역할을 맡겨도 말을 못 해서 거부하지 않으니 첫째는 좋은 친구였다. 물론 아기가 엄마 말을 안 듣고 밥 먹다가 집을 자꾸 나가긴 하지만. 


2학기가 시작되고 첫째가 친구들과 놀잇감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같은 반 아이들이 첫째에게 "첫째야. 그러지 마!" 하고 소리를 높인다. 첫째는 무심한 얼굴로 자기 멋대로 아이들 사이를 휘젓고 다녔다. 다행히 같은 반 아이들은 첫째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기에 첫째를 아주 미워하지는 않는 듯했다.

여섯 살이 되자 첫째는 친구들의 작품을 피해 돌아가거나 넘어 다니기 시작했다. 자신이 친구들의 놀잇감을 건드리면 친구들이 많이 속상해한다는 것을 이해한 것 같았다.

놀라운 사회화의 과정이다. 그리고 우리 집에도 이것이 필요하다.


둘째가 또 언니의 잘못을 고발한다. 나는 둘째를 안아주며 차분한 목소리로 둘째에게 말한다. "언니가 흔든 막대기에 맞았어? 아팠겠다. 언니한테 앞으로 조심해 달라고 말해보자." 둘째는 언니에게 "언니. 조심해!" 소리를 지른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둘째가 새된 목소리로 나에게 언니의 실수를 알린다. "그래? 언니에게 속상하니 그러지 말라고 말해봐." 언니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하는 둘째의 목소리가 그 전보다 부드럽다.

둘째의 얼굴이 좀 편해 보인다. 나는 둘째에게 말을 건네었다. "이제 괜찮아? 언니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래. 실수한 거래." 둘째가 "그래? 일부러 한 게 아니니까 괜찮아." 답한다.


어른인 나는 아이들을 위해 틀어둔 김진영 동요집의 < 꾹 참았네 > 를 듣고 화가 났다는 것을 충분히 표현하면서 용서하는 법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다음부턴 그러지 말라고 분명히 말하는 것이다.


친구가 내 곁을 지나가다가
내가 만든 집을 무너뜨렸네
'쿵' 하고 싶지만 꾹 참았네
친구야 친구야 다음부턴 그러지 마라
다음부턴 그러지 마라


아기 같은 첫째도 자신의 행동으로 상대의 감정이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동생의 작품을 건드리거나 막대기로 툭 치게 되지 않는, 타인의 공간을 배려하는 매너를 행하게 된다면 더 좋겠다. 

둘째도 본인의 불편함을 잘 표현하고 상대를 용서하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또 큰 소리로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을 경험하면 좋겠다.

이 것이 맞는 방법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7년 차 엄마의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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