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도 있지
실은 나도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답니다
아이들과 외출 준비 중이었다. 옷을 갈아입히다가 둘째에게 "외출 전이니 화장실에 미리 갈까?" 하니 여섯 살 둘째가 "응!" 대답하고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혼자 볼 일을 보고 나온다. 나도 모르게 말을 흘리고 말았다. "정말 이렇게만 해주면 애 키우는 거 쉽겠다."
옆에서 함께 첫째와 씨름하고 있던 남편도 "그래. 첫째가 덩치는 큰데 돌쟁이처럼 행동하니 비교가 안 되게 힘들지" 한다.
첫째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인데 둘째와 비교한 것이 미안해서 "그렇지. 그런데 둘째도 공부 많이 해야 할 나이 되면 부모 노릇이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네." 하고 덧붙였다.
최근 첫째와 지내는 것이 조금 힘들어졌다. 여느 가족이 그렇듯 아이들과 지내며 좋은 시기도 있고 나쁜 시기도 있는데 첫째가 기관에 다니지 못한 지 오래되었고 날은 추워져 바깥활동이 줄면서 어려운 시기가 찾아왔다.
첫째가 이틀에 한 번 꼴로 새벽에 깨기 시작했다. 기온 변동이 큰 여름과 겨울엔 특히나 첫째가 잠을 잘 자지 못한다. 이는 각성 조절과 관련이 있다 배웠다.
우리는 쉬기 위해 각성을 낮추거나 집중하기 위해 각성을 높이며 조절한다. 예를 들면 졸음이 올 때는 껌을 씹는다거나 기지개를 켜서 각성을 높이려고 노력을 한다거나 자기 전에 편한 음악을 듣는다거나 따듯한 물에 씻어 몸과 정신을 이완시켜 각성을 낮춘다. 각성이 높으면 지나치게 흥분이 되거나 긴장한 상태이고 각성이 낮으면 늘어진다. 우리는 평소 직장에 출근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고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자신의 각성을 높이고 낮추며 힘들지 않게 조절하며 생활한다.
첫째는 이 각성조절이 잘 되지 않는다. 신경발달의 문제라고 한다. 각성이 너무 낮거나 너무 높은 상태에 있다 보니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남의 눈에 띄는 행동을 반복한다. 제자리에서 높이 점프하거나 일정한 거리를 왔다 갔다 반복해서 달린다. 소리를 지르거나 크게 웃고 박수를 친다. 각성이 조절이 되지 않으면 본인도 괴로운 상태이기 때문에 가끔은 힘들어 큰 소리로 울기도 한다. 이상하고 낯설어 보이지만 이런 행동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2주 이상 아이가 조절이 되지 않고 있다. 쿵쿵 쿵쿵. 아이가 뛸 때마다 나는 소음 때문에 아랫집 걱정이 된다. 두터운 층간소음방지매트를 깔았지만 소리가 모두 흡수되는 것은 아니다. 제발 좀 뛰지 마.... 아이를 잡고 꼭 안아주지만 소용없다.
평소와 같은 시간에 눕혀도 잠에 잘 들지 못하거나 새벽에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거나 웃거나 운다. 다시 잠들지 못해 몸부림치는 아이를 밤새 끌어안고 다시 눕히며 부모인 우리도 덩달아 잠을 못 잔다. 신경은 한껏 예민해진다.
각성 조절을 위한 방법들은 알려져 있지만 아이들마다 또 연령마다 효과있는 방법은 다른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미숙하게 대처를 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는 첫째가 편해질 방법을 찾기 위해 항상 노력 중이다.
요즘처럼 첫째의 각성 조절에 문제가 생길 때면 우리는 이런 것들을 확인한다.
첫째의 일과가 어제와 동일했는가, 어제 일정 시간 바깥놀이를 했는가, 밤새 체온조절이 잘 되었는가, 오후 6시 이후 티비, 영상매체, 장난감 등 인공적인 빛과 소리를 차단시켰는가, 오후 4시 이후 단 음식을 먹지 않았는가.
아이의 괴로움을 잘 몰랐을 때는 아이가 남보기에 이상한 행동을 해서 속상할 뿐이었다. 아이 역시 괴로워한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아이와 함께 방법을 찾아 헤맸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그네를 하루 종일 태워주고 트램펄린을 수 없이 뛰게 했다. 늑목 사다리에도 계속 오르내렸다.
바깥놀이가 필요한가 싶었을 땐 겨울이고 여름이고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놀이터에 나갔다. 아이와 내가 더위를 먹어 며칠 더 고생한 적도 있다. 집안에서 뛰지 못하게 뛰기 시작할 때마다 업고 있기도 했다. 간판의 빛과 자동차의 소음이 아이에게 자극이 된다는 것을 알고 밤에는 외출을 삼갔다. 방에는 암막커튼을 쳤다.
그렇게 방법을 찾다가 우리는 산길을 오르거나 걷는 것이 첫째의 안정에 가장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날씨가 춥고 궂었지만 우리는 첫째를 위해 뒷 산에 가기로 했다. "고마워. 여보." 외출 후 신랑의 어깨를 두드리니 꺼칠한 얼굴로 "내가 힘들어서 그래." 하며 웃는다. 남편은 추위를 많이 타는데 잠을 못 자는 게 더 괴로웠나 보다. 외출 덕분인지 저녁에 아이가 뛰지 않는다. 다행이다.
아이의 어려운 행동(문제행동 또는 도전적 행동 이라고도 하는)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참 어렵다. 내 자식의 허물을 들추는 것만 같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밖에 못 키운 내 문제처럼 느껴진다.
이러이러하여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다고 말하는 것조차 부모로서 죄를 짓는 것 같다. 그럴 거면 왜 낳았냐, 힘들 거 모르고 낳았냐 비난이 쏟아질 것만 같다. 내게는 (그놈의)모성애가 없나 싶어 부끄럽기도 하다.
솔직히 나는 열 달 배에 품어 우리 아이들을 낳았어도 갓난 내 아이들이 낯설었고 어찌 키워야 할지 두려웠다. 첫째나 둘째 모두 내 아이들인데 친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사랑하지만 지금도 아이들을 보면 예측이 잘 안된다. 그래서 스릴있긴 하지만. 우리 집에 같이 사는 이 '타인들'과 잘 지내기 위해 나름 노력하나 인기는 없다.
요즘처럼 첫째와 지내기 힘든 시기가 되면 양면적이고 날 선 감정들이 내 안에 휘몰아친다. 나는 아직도 내 아이의 장애를 충분히 인정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글로 적어내기 어려웠던 나의 마음, 내가 힘든 솔직한 이유를 용기를 내어 적어본다.
'네, 괜찮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게 잘 지내요' 하며 적당히 감추며 살려니 내 속이 썩을 것 같다. 뭐, 오늘은 이렇다. 내일은 모르겠지만. 매일이 꽃길일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