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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사랑 May 17. 2021

그의 방황이 끝났다

과연?

친정엄마는 나더러 똑똑한 것 같은데 중요한 데서 헛똑똑이 짓을 한다며 종종 혀를 찼다.
돈은 버는데 꾸미고 갖추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은 일, 임신 초 첫째의 장애를 알았을 때 바로 임신 중지하지 않은 일,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바리스타로 전향한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은 일.

내게도 이유는 있다. 꾸미고 갖추는 일은 엄마가 느끼는 것만큼 나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 나는 대신 책을 샀다. 새 책 냄새를 킁킁 맡으며 황홀감을 느꼈더랬다. 주사 맞는 것도 무서워하는 내게는 임신 중지가 더 끔찍하고 두려운 일이었고 남편과 함께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있었다. 남편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뒤늦게라도 도전한 일은 걱정은 되었지만 명의 인간으로서 박수 쳐줄 한 대단한 일이라 생각했다.

나는 헛똑똑이가 맞나 보다. 다만 딸 잘되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던 엄마가 알지 못한 것은 헛똑똑 하게 결정한 후에도 딸은 적당히 즐겁게 잘 지냈다는 점이다.


작년 12월부터 시작한 남편의 구직활동이 어려워졌고 남편은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 재취업하기로 결정했다. 자아실현을 위해 힘차게 발을 떼었던 그가 가장으로서 책임감 때문에 발걸음이 무거워졌나 싶어 축하보다 미안함이 앞섰다. "여보. 내가 부담을 줬어? 나는 여보가 카페일 도전하는 거 괜찮은데."

구직 기간이 길어지며 스스로 초조해지기도 했고, 카페 사업에 대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만만히 보고 뛰어든 것 같다며 신랑은 담담하게 설명을 했다. 이렇게 그의 짧은 방황이 끝이 났다.


처음 그가 퇴사하고 싶다고 했을 때는 38살이었다. 그간 고생했으니 좀 쉬고 다시 시작해보자고 격려했다. 그때 주변 엄마들에게서 30대 말에서 40대 초 남자들 사이에 도는 무서운 역병, '사업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남 일인 줄 알았는데, 그는 갑자기 카페를 차리고 싶다며 이직한지 얼마 안된 회사를 관두겠다고 했다.

남편이 미웠다. 첫째의 재활치료 비용은 만만치 않다. 적어도 초등학교까지는 재활치료 비용이 줄지 않을 걸로 예상하고 있었기에 이 남자가 철이 이렇게 없나 싶었다. 친정은 사업을 했다. 365일 밤낮없이 고되게 일하는 자영업자의 생활이, 그 가족이 얼마나 재미없게 인생을 사는지 나는 겪었다. 어릴 때는 사업하는 남자는 안 만나야지 하는 결심도 했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니 카페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남편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믿음직스럽고 현명한 사람이라 미움을 유지할만한 이유가 별로 없었다. 가장이지만 그 역시 꿈을 꾸고 도전하며 살아가인간이고, 마냥 놀며 먹고 지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직업을 준비한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행복한 얼굴로 바리스타 자격증 과정 교육을 듣고 카페에 취업해 다니던 남편이 약간 얄밉기도 했지만 그 마음 역시 반년을 가지 못했다. 남편이 도전을 하는 동안 나 역시 돈을 벌지 않았고 장애인 부모 활동가로 일했다. 남편은 그런 나를 군말 없이 지원했다. 부부가 철없이 이러고 있으니 서로 원망 거리가 없다.


일 년 남짓 근무하던 카페가 문을 잠시 닫는 통에 남편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구직활동 기간이 남편의 생각보다 길어졌다. 남편의 고민이 깊어지는 사이 나는 남편에게 살림과 육아를 모두 맡겨두고 신나게 부모 활동을 하러 다녔다. 노트북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는 것. 장애인 권리옹호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 낯설지만 참 재미있었다. 이렇게 잘 지내니 가족의 미래에 대한 불안은 있어도 불만은 있을 수가 없었다.


남편의 방황이 이렇게 멈출 줄 았았다면 백수남편이라고 놀리지 말걸 그랬다. 아내인 나는 괜찮지만 걱정하실 부모님 생각 좀 하라고 한 번씩 찌르지도 말걸 그랬다. 남편은 힘든 걸 티 내지 않는 사람이라 아무렇지 않은 척, 혼자 고민이 참 많았을 것이다.


나의 베프이자 지원군이 본인의 도전을 멈추고 옛 직장에 복귀한다. 적응하는데 시간은 약간 필요하겠지만 그의 복귀는 성공적일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아마 이 멈춤은 잠시일 것이다. 그는 자유롭게 꿈꾸고 거침없이 도전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사람이니까. 그만큼 용감하지 않은 아내이지만 남편의 다음 도전에도 든든한 지원군이 되려고 마음을 먹는다.


그동안 고생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응원합니다.
나는 언제나 당신 편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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