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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진 Jan 08. 2021

보름달을 잡는 방법

달빛에 그림자가 생기는 가을밤이었다. 강아지풀이 무성한 아파트 뒤뜰에서 동네 어른들은 맥주를 마셨고, 아이들은 안주로 가져온 과자를 집어먹고 있었다. 이 날, 처음으로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다고 기억한)다. 이렇게나 좋은 소리를 작은 벌레가 낸다니. 우리는 귀뚜라미를 잡아 가져가기로 했다.     


소리를 살금살금 따라가다가 문득 도망치는 귀뚜라미를 종이컵으로 덮어 잡았다. 그런데 갇힌 귀뚜라미는 소리를 내지 않았고, 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을 벌레의 모습을 상상하니 꺼내어 확인해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계속 가둬두기에는 질식할까 걱정되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몇 차례인가 잠시 덮어두고 보다가 놓아주기를 반복했을 뿐, 누구도 귀뚜라미를 가져가지 못했다.     


우연히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치면 그 때의 귀뚜라미가 떠오른다. 횡단보도 끝 가로수 아래 앉아 미숙하게 기타를 연주하던 할아버지, 신축을 위해 잠시 철거한 건물 틈으로 처음 햇빛을 쬐는 옆 건물의 깨끗한 뒤통수, 석산과 일월비비추가 가득한 도서관 앞뜰에서 헤매던 너구리 한 마리. 이 풍경들도, 컵에 잠시 덮어두었다가 오래도록 기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월간 <환경과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Korea)>에 글과 그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 본 꼭지는 2020년 6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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