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언젠가 나무 이름이 궁금해질 거야”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작고 여린 풀들에 폭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노루귀, 깽깽이풀, 동의나물, 각시수련... 야생화 도감에는 집이나 학교에서 보지 못했던, 알고 싶고 길러보고 싶은 식물들이 수백 종이나 되었다. 나무에겐 도감 속 풀들이 주는 특별함이 없었고, 당시 아파트에 살았기에 나무를 심어 기르는 재미도 느낄 기회도 없었다. 단순히 그냥 관심이 잘 가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나무 이름이 궁금해지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여러 계절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나무 이름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대학교 수목학 수업마다, 교수님이 ‘이 나무 이름은 뭔가?’ 하고 물으셨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학생들과 캠퍼스를 돌아다니다가 눈에 띄는 나무 앞에 멈춰 서서 이 나무의 이름은 무엇인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정답이 나온 뒤 혹은 여러 번의 오답 끝에 정답을 공개하신 뒤에야 수업을 이어가셨다. 시험도 같은 방법으로 치렀기에 우리들은 나무의 이름을(나무를 알아보기 어렵다면 그 위치를) 달달 외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울에서 한 학기를 보내고 돌아온 고향 풍경은 뭔가 달라져 있었다. 매년 봄 집 앞에서 희고 탐스러운 꽃을 피우던 나무는 ‘목련’이 아니라 ‘백목련’인 것*을 알게 되었고, 아카시아**와 비슷하지만 꽃에 향기가 없어서 엄마와 둘이 ‘가짜 아카시아’라고 불렀던 나무는 회화나무였다. 백목련은 매년 가지치기를 해 20년이 넘도록 그 키가 2층을 채 넘기지 못했는데, 교수님이 백목련은 그냥 길러도 나무 모양새가 흩어지지 않고 꽃도 많이 피는 좋은 나무라고 하셨던 것이 생각나 아쉬웠다. 회화나무는 학자를 상징하는 나무이니까,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린이 놀이터에 심은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하게 되었다. 그저 곁에 있을 뿐이던 나무들이 각자의 이름을 갖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나는 야생화만큼이나 나무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나무가 이렇게 재미있는 친구들이던가? 나는 더 두꺼운 나무 도감을 샀고, 수목원에 다녔고, 사진을 찍었고, 그림을 그렸으며, 즐거웠다. 동시에, 중학교 때 선생님은 왜 그때 ‘언젠가 나무 이름이 궁금해질 거’라고만 하시고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지는 않은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 선생님의 첫 수업 시간이 생각난다. 성함을 칠판에 적으신 뒤, 학생들에게 봄이면 가장 먼저 피는 꽃이 무엇인지 물었고, 나는 손을 번쩍 들고 복수초라고 대답했다. 그럼 우리 동네에서 가장 먼저 피는 꽃이 무엇인지 물어보셨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큰개불알풀 이라고, 파란 꽃이 학교 근처 들판에 피었다고 말씀해주셨다. 알고 보니 그 선생님은 자연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었고, 생태보호단체에서 활동하신다는 이야기도 건너 건너 들었다. 그 뒤로 나는 모르는 꽃 이름을 여쭤보러 종종 찾아가기도 했고, 선생님은 누군가 파헤쳐 놓은 야생화를 구조해왔다며, 나에게 노루귀 몇 뿌리를 건네기도 했다. 그렇지만 수업에서 식물 이야기를 꺼내셨던 것은 첫날이 마지막이었다. 나무 이야기를 해주시지 않았던 것처럼.
그해 봄, 학교 앞 들판을 혼자 서성이며 꽃이 피었는지 살피는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선생님은 어떤 순간을 기다리셨던 것이 아닐까? 모두가 지나쳐가는 이 들판에서 누군가 가장 먼저 파란 꽃을 피운 작은 풀을 발견하는 계절을, 평범한 얼굴로 늘 주변을 듬직하게 지켜주던 나무들의 이름이 궁금해질 때를. 오지 않을지도 모르고, 어떻게 오게 하는지 모르는 어떤 순간을. 그런 마음으로 ‘너도 언젠가 나무 이름이 궁금해질 거야’라고 하셨던 것이 아닐까?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모두가 나무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내가 오랜 시간 야생화를 나무보다 좋아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게임이, 축구가, 영화가, 강아지가, 글이, 혹은 여행이 나무나 그 무엇보다도 더 사랑스러울 수 있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듯 당연한 것처럼, 나이가 들면 꽃과 나무가 좋아질 거라는 말도 하고 싶지 않다. 나처럼 나무 공부를 하고 나면 나무가 좋아질 거라고도 하지 않겠다. 다만,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에게 이 말만은 전하고 싶다. 언젠가 나무 이름이 궁금해질 때가 올 지도 모른다고.
*사소해 보이고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정확한 이름을 불러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뤄보도록 하자
**흔히 아카시아로 부르지만, 아까시나무가 정확한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