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름 대결

누구에게나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가 있다.

by 조현진

누가 더 식물 이름을 많이 아는지 겨루곤 한다. 조경학과 동기들을 만나는 날이면, 길가에 선 저 나무의 이름은 무엇인지, 개나리나 진달래 학명을 기억하는지 따위의 문제를 서로 내는 것이다. 은행나무나 느티나무처럼 쉬운 문제로 시작하며 분위기를 달군 뒤 어려운 문제를 내야 한다. 오답이 나와야 본격적으로 놀려먹을 수 있으니까. 결국 정답을 대지 못한 친구는 “원래 알았는데 잠깐 까먹었어”라며 변명하고, 이제 조경 일을 하지 않는 한 명은 “나는 몰라도 너는 알아야지!” 하며 짓궂은 표정을 짓는다.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 같은 표정을 하는 친구를 보며 우리는 와하하 웃어댄다. 내가 아는 나무만 물어봐서, 혹은 옆 친구가 정답을 살짝 알려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조경학을 전공하고 나면, 모르는 나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이 생긴다. 건축, 토목, 도시공학 같은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공간을 만드는 일을 하지만, 조경은 살아있는 나무를 소재로 쓴다는 것이 타 분야와 구별되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또, 대학 4년 동안 수목학, 식재계획 등의 식물 관련 수업을 매 학기마다 치러낸 전공자이자 다양한 나무를 심어 공간을 만드는 현직 조경가인 그 친구가 ‘이 나무의 이름은 모르겠어’라는 말을 입에 담기엔 부끄럽고 전문성이 떨어져 보일까 하는 걱정이 들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냈던 어려운 문제는 조경가 친구가 틀릴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모든 나무들이 조경에 쓰이지는 않는다. 증식, 재배가 까다로워 유통되지 않는 나무와 유달리 이식이 안 되는 식물들은 심어 가꿀 방법이 없다. 거기에 대기 오염과 심한 일교차 같은 혹독한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는 식물과, 사람들에게 심한 알레르기를 일으키거나 가시 돋친 줄기를 마구 뻗는 나무들은 심기 곤란하다. 이제 남은 나무 중 꽃이나 열매, 줄기와 잎사귀 등의 관상가치가 높은 종이 조경가가 자주 쓰고, 그만큼 잘 아는 식물군이 된다. 내가 낸 함정 문제들은 이 범주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으니, 친구가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가 있을 것이다. 친구에게 조경 바깥의 식물들이 낯설었던 것처럼, 그저 접해보지 못한 나무들이 있겠고, 거기에 학자들 간의 의견이 엇갈리는 나무, 후속 연구에 따라 이름이 바뀐 나무가 혼란을 더해줄 것이다. 유사종 사이의 교잡 혹은 지역 변이로 색다른 형태를 갖는 나무들, 그리고 새로 들여온 외국 수종과 낯선 원예품종도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기 어렵다. 나 역시 이런 식물들 앞에 서면 “그래도 식물 그리는 사람인데, 이 나무 이름도 몰라서야 어쩐담” 하며, 혼자서 애써 변명하곤 했다.


그 조경가 친구는 나에게 정답을 듣고도 여러 번 다시 물어보았다. 꼭 기억해두겠다고, 그래서 다음에 그 나무를 만나면 그 이름을 제일 먼저 불러주겠다고 하면서.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 앞에 설 때마다 모르는 나무 이름을 여러 번 되뇌던 이 친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나무 이름을 모르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자. 아니, 사실 조금 부끄럽지만 어떤 식물인지 꼭 알아보고 기억해 두는 거야. 그리고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에는 그 이름을 불러주는 거야.” 하는 생각이 그 친구의 목소리로 들린다.


이번 주말에도 그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이번에는 어떤 나무를 물어볼까? 역시 조경가의 식물군과 한참 먼 나무들이 떠오른다. 한라산 정상부에만 드물게 자라는 암매를 물어볼까? 아니면 북한 고산지대에 사는 담자리참꽃? 틀리라는 의도가 너무 빤히 보이는 것 같은데 다른 나무를 골라볼까?...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담자리참꽃, 담자리참꽃’하는 친구의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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