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무의 이름을 알아내는 일

by 조현진

종종 식물 조사 일을 한다. 특정 공간의 식물종 리스트를 만들고, 그 분포를 지도와 사진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본업은 그림이지만 이런 작업 의뢰도 반갑다. 새로운 식물들을 만날 좋은 기회이고, 때론 조사 내용을 토대로 그림 작업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으므로. 다만 문제는, 지난 조사작업이 겨울, 그러니까 식물종 조사에 큰 힌트가 되는 잎과 꽃, 열매가 거의 없는 계절에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겨울의 나무를 보고 어떤 종인지 알아볼 있을까? 다행히도 가능하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앙상한 줄기 자체가 큰 힌트가 되기 때문이다. 우선 줄기가 뻗어나가는 모양이 나무마다 제각기 다르다. 은행나무는 줄기에 짧고 굵은 가지가 붙는 반면 단풍나무 줄기는 두 갈래씩 갈라진다. 또, 줄기가 뻗어 만드는 나무 전체의 모습(수형)이, 은행나무는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은 원뿔형이고, 단풍나무는 가로로 퍼진 모양새이다. 줄기의 껍질, 즉 수피도 결정적 단서이다. 가로로 얇게 벗겨지는 자작나무의 하얀 수피, 옛날 군복 같은 모양새의 조각으로 벗겨지는 알록달록한 모과나무 수피처럼 개성이 뚜렷한 나무라면 줄기 껍질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또, 줄기에 남은 잎 떨어진 자국과 겨울눈도 종마다 고유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줄기만으로 나무의 이름을 알 수 없다면, 지난 계절의 흔적을 찾아볼 수도 있다. 나무에 남은, 혹은 근처에 떨어진 낙엽이나 시든 열매 따위에서 힌트를 얻는 것이다. 나무 주변에 밤송이가 떨어져 있다면 밤나무, 감꼭지가 뒹군다면 감나무일 테니까. 다만 식물체에서 떨어진 것과 함께, 앞서 살펴본 요소들까지 두루 살피는 것이 좋다. 그저 누군가 버린 밤송이나 감꼭지일 수도 있으니까. (줄기, 겨울눈과 잎 자국까지 다루는) 식물도감과 장갑, 핫팩이 있다면 한겨울에도 나무의 이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라고 자신하며 도착한 대상지에서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그곳은 가동이 중단된 하수처리장이었는데,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만큼 나무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자라고 있던 것이다. 2-3m 정도 높이에서 구불거리는 나무들은 촘촘하게 엮여 있어 줄기가 한눈에 드러나지 않았고, 뒤섞여 흩어진 낙엽들이 혼란을 더했다. 결국 복잡한 덤불 속 한 그루 한 그루를 한참 동안 조심스레 짚어본 뒤에야 보고서에 그 이름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줄기와 도감을 오가며 고민을 하고도 명쾌하게 동정해내지 못한 두 나무는 결국 ‘미동정’으로 표기할 수밖에 없었다.


봄과 여름에 두 차례, 다시 대상지를 찾았다. 이제 잎과 꽃이 있는 계절이니 ‘미동정’ 수목의 이름을 바르게 알아내리라 생각하면서. 그런데 놀랍게도, 두 나무는 내가 잘 알던(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무들이었다. 바로 무궁화와 괴불나무. 사람 키 높이 정도로 짧게 잘라 키우는 모양새에 너무 익숙했던 걸까? 오랜 시간 뒤얽혀 자란 가지에서 무궁화라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되돌아보니 괴불나무는 꽃과 열매만 알고 동정해온 나무인 듯했다. 또, 지난겨울에 잘못 작성한 것도 있었다. ‘백목련’과 ‘자주목련’ 두 식물은 꽃의 색상으로 구분하는데, 자주목련보다 흔히 심는 백목련일 것으로 섣불리 생각하고 자판을 두드린 것이었다.


지난겨울의 파일을 열어, 나무의 이름을 다시 적었다. 미동정1과 미동정2를 무궁화와 괴불나무로, 그리고 백목련은 자주목련으로. 겨울나무의 이름을 알아내는 일은, 때론 그것을 얼마나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 게 아닐까 싶다. 편협한 시야와 부족한 지식으로 중무장한 나에겐 더더욱. 나무가 제 이름을 조금 더 또렷한 목소리로 속삭여주는 계절을 조용히 기다려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매거진의 이전글나무 이름 대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