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에게 식물 이름을 알려주시는 건 어머니였다. 해바라기, 봉선화, 분꽃, 라일락, 쑥, 달래, 냉이... 내가 유치원에 다녔을 즈음이었을까? 오래된 기억이지만 식물 이름을 또박또박 말해주던 젊은 어머니의 다정한 목소리가 선명하다. 그런데 내가 좀 더 자라 식물을 공부하게 되면서, 이때 어머니와 함께 불렀던 식물 이름 중 조금 정확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싱아’라고 알려주신 풀이 있었다. 작은 가시가 돋은 덩굴에서 보드라운 삼각형 잎을 한 장 따 내 입에 넣어주셨는데, 정말 신 맛이 났다. 새콤한 맛과 ‘싱아’라는 정다운 이름이 바로 내 뇌리에 박혀서, 이 식물을 만날 때마다 ‘이 풀의 이름은 싱아, 신 맛이 나서 싱아.’라고 생각하며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가짜 아카시아’도 있었다. 향긋한 아카시아*와 꼭 닮은 나무였는데, 봄에 피는 아카시아꽃과 달리 여름에 피었고 강한 향기도 없어서 우리끼리 그리 부른 것이다. “아카시아는 가시가 있는데 가짜 아카시아에는 없네”, “아카시아 잎은 동글동글한데 가짜 아카시아는 조금 더 뾰족하네” 하며 ‘가짜 아카시아’를 들여다보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식물 공부를 하게 되어서야, 이 식물들의 정식 명칭을 알게 되었다. 식물 이름의 표준어 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표준식물목록이란 것이 있는데, 이를 살펴보니 우리가 ‘싱아’라고 불렀던 식물의 본명은 (충격적 이게도) 며느리밑씻개*였고, 싱아라는 이름은 다른 식물의 차지였다. 또 ‘가짜 아카시아’는 ‘아카시아’와 나란히, 같은 콩과 카테고리에 있었다. 각각 ‘회화나무’, ‘아까시나무’라는 이름을 달고서. 이제 정식 이름을 알게 되었으니 고쳐 불러야겠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며느리밑씻개보다는 싱아가, 회화나무보다는 가짜 아카시아라는 이름에서 마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을 알았다면, 그 어린 날, 어머니와의 산책에서 새콤하고 보드라웠던 잎사귀를 맛볼 수 있었을까? 며느리밑씻개를 만날 때마다 반가운 마음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있었을까? 우리가 ‘회화나무’란 이름을 알았다면, 여름날 보도블록 위로 가득 떨어진 노란 ‘가짜 아카시아’ 꽃을 들여다보며 아카시아와 어떤 점이 비슷하고 다른지 들여다보았던 시간도 있었을까?
수목원에서 식물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씩 나무를 엉뚱한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이름을 정정해 드려야 할지 잠깐 고민해보지만, 심각한 오류만 아니라면 이내 그만둔다. 그들도, 어린 날의 내가 어머니와 보냈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니까. 식물을 매매하거나,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식물을 구경하는 따뜻한 일상의 순간일 뿐인데 식물 이름이야 아무렴 어떠랴. 그들이 나무의 이름을 부르던 다정한 목소리를 오랫동안 기억하기를 바랄 뿐이다.
*’ 아카시아’의 정명은 아까시나무이지만, 이 글에서는 당시 불렀던 이름인 아카시아로 표기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며느리밑씻개와 비슷한 어감의 식물 이름이 꽤 된다. 소경불알, 중대가리풀, 노루오줌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