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학 수업

by 조현진

대학교 2학년, 우리 과 동기들은 어렸다. 누군가는 대학, 조경학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 재수나 전과를 고민했고, 동아리 활동에 매진하기도 했으며, 다른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이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조경학 공부가 재미있어도 전망이나 수입 같은 이야기를 하며 ‘조경은 하지 말라’ 던 선배들의 말에 흔들렸고, 그럼에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덮어놓고 그저 열심히 하기도 했다. 우리는 조경가가 되어야 할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할지, 그러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 시절 우리는 수목학 수업을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교수님과 학교 내에 심긴 나무들을 직접 관찰해보고 그 이름을 맞춰야 했는데, 이 시간은 즐거웠지만 어려웠다. 교수님과 다른 학생들 앞에서 어쩌면 오답일 수도 있는 나무 이름을 이야기해야 하는 부담감도 있었고, 그 나무를 그렇게 동정한 근거까지 정확하게 제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냥 “이 나무는 소나무, 저건 잣나무”란 대답은 충분치 않았고, “바늘처럼 생긴 잎이 두 개씩 뭉쳐나고 줄기가 붉은 것은 소나무이고, 마찬가지로 상록성 바늘잎을 가졌지만 다섯 개씩 뭉쳐나고 줄기가 회색이면 잣나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었다.


교수님이 매번 동정의 근거를 요구하신 건, 나무들은 사소한 차이로 다른 종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소나무류 이야기를 해보자. 앞선 소나무처럼 잎이 두 개씩 달리지만 줄기가 흑회색인 것은 소나무가 아닌 곰솔이고, 잣나무처럼 잎이 다섯 개씩이지만 잎이 짧고 나무가 나무 전체가 작은 것은 섬잣나무*, 역시 잎이 다섯씩 나지만 길쭉한 열매가 한쪽으로 휘는 것은 스트로브잣나무이다. 거기에 잎이 셋 씩 달리는 리기다소나무나, 수피(나무껍질)가 회백색인 백송 등, 여기에서 다루기엔 너무 길어질 만큼 엇비슷한 소나무 종류는 많다.


이렇게 구별된 종들은 제각기 다른 역할을 하게 된다*. 멋스러운 소나무는 건물 입구(고급 아파트 입구에 많다)나 공간의 중심처럼 상징적인 공간을 강조하고 포인트를 주기 위해 심는다. 반면 잣나무는 건축물보다는 다른 나무들이 많은 공원, 그보다는 높은 지대의 숲이 어울린다. 곰솔은 바닷바람에 강해서 해안선과 가까운 지역에 많이 자라고 또 심는다. 섬잣나무는 나무가 작고 단정해서 정원에서 다른 식물들과 어우러져 지내고, 크고 빠르게 자라나는 스트로브잣나무*는 주로 공간 외곽에 심어 각 공간의 경계를 나누는 역할을 담당한다.


교수님의 질문에 대답하기 특별히 더 어려운 나무들이 있었다. 바로 어린 나무들. 나무를 동정할 때에는 앞서 소나무류를 구별한 것처럼 다양한 부분을 기준점으로 삼는다. 보통 잎의 모양과 줄기에 붙는 형태, 나무껍질의 색상과 패턴, 나무 전체의 모양새를 종합적으로 보는데, 꽃이나 열매가 있으면 훨씬 쉬워진다. 봄날의 개나리나 가을날 감나무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듯이. 그런데 어린 나무들은 꽃이나 열매는 고사하고 나무껍질이나 나무 모양새도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 작은 잎에만 의존해 구별해야 했다. 잎 몇 장뿐인 나무들이 어떤 나무로 자라날지 우리는 정답을 알 수 없었다.


어린 나무들은 어떻게 동정해야 할까? 다행히 은행나무처럼 다른 나무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잎사귀가 있는 나무라면 동정이 쉽다(은행나무와 같은 잎을 가진 나무는 없다). 아리송한 잎이라면 천천히 도감을 살펴보자. 가깝고 비슷한 식물들은 대체로 도감에서도 같은 자리에 모여 있으므로, 비슷해 보이는 식물만 찾아도 절반은 찾은 셈이다. 비슷한 잎을 단 식물들이 모여있는 페이지에서, 눈앞의 식물이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어려운가? 그때의 우리처럼 작은 나무 앞에서 고민에 빠졌다면, 이 방법을 권하고 싶다. 도감을 덮고 주변을 둘러보라고. 같은 잎 가진 큰 나무, 그러니까 꽃, 열매, 나무껍질과 전체 모양새를 확인할 수 있는 듬직한 나무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주변에 그런 나무가 없다면,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겠지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줄기를 뻗어 제 수형을 갖춰나가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것도 괜찮고. 대학교 2학년,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맡을지 알 수 없는 어린 나무였다.



*도시에서 심는 섬잣나무에 대한 묘사이다. 울릉도에 자생하는 섬잣나무는 잎이 길다.

*물론 쓰임은 정해져 있지 않다. 조경가의 의도대로, 다양한 방법으로 나무를 심을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보편적인 방법을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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