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풍경감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현진 Jan 18. 2024

스노볼의 파수꾼

한 낮 버스에 앉아 창 밖을 보는 걸 좋아한다. 파란 하늘 아래 산들거리는 가로수와 제각기 다른 차림으로 오가는 사람들. 신호등 불이 자리를 옮기면 자전거가 멈춰 서고 버스가 다시 움직인다. 평범한 풍경이지만, 버스 창문 밖으로 보면 무엇이든 안온하고 괜찮아 보인다. 늘 평화로운 스노볼처럼.


그렇지만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이런 감상은 모두 휘발되어 사라진다. 뭉개진 은행 냄새와 간판을 가리는 무성한 가로수에 불평하는 목소리가 도시의 소음과 뒤섞여 시끄럽다. 가로수 보호대 틈에 박힌 담배꽁초도 눈에 들어온다. 어지럽다.


모두가 사용하지만 누구도 내 집처럼 여기지 않는 이 공간에 나무를 키운 사람들을 생각한다. 내가 버스 창문 너머에서 구경하는 동안,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이는 공간에서 나무를 고르고, 심고, 가꿔온 사람들. 처음 그들이 꿈꾸었던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가로수를 지키며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월간 <환경과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Korea)>에 2021년 10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방 안의 온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