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풍경감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현진 Feb 13. 2024

하고 싶은 일을 하니 행복하겠다

군인 시절, 가장 힘든 훈련은 행군이었다. 20년간 끼니와 운동에 게을렀던 내 몸은 무거운 짐을 지고 수십 km를 걷는 일을 버텨내지 못했다. 훈련 중 다친 무릎도 때때로 아팠고. 그럼에도 부대의 모든 병사들은 행군해야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같은 무게의 군장을 메고,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행렬. 짧은 휴식시간을 기다리는 긴 발걸음. 그 곁에 있던 식물을 기억한다. 농지 사이 연못에 핀 노랑어리연꽃, 개울 옆 풀밭에서 하늘거리던 금꿩의다리, 도로변에 줄지어 피었던 좁쌀풀과 개망초, 그리고 검은 숲속에서 하얗게 빛나던 은사시나무. 행군은 힘들었고 식물은 아름다웠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니 행복하겠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그때의 행군을 떠올린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해도 일은 일. 공평하게 무거우며 기나길 것이다. 다만 나는 그 행렬 속에서 식물을 헤아리는 중이라고, 늘 하지 못했던 대답을 이 글로 대신한다.


*월간 <환경과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Korea)>에 2022년 4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님 초딩이셈? 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