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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진 Feb 06. 2024

님 초딩이셈? 즐!

2000년, 온라인 게임이 유행이었다. 각자의 집에서 라이온킹이나 고인돌 같은 걸 하던 나와 친구들은 같은 게임, 같은 서버에서 캐릭터를 만들어 함께 모니터 속을 여행했다. 그런데 레벨을 올릴수록 우리는 초등학생이 아닌 척을 해야 했다. 고급자용 사냥터에서는 여러 명이 모여 함께 사냥하는 ‘그룹사냥’이 필수였는데, 어린이를 잘 끼워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딩’은 ‘노매너’라서 같이 사냥할 수 없다고 했다. 때론 불만족스러운 역할을 맡더라도 공격수는 공격을, 보조자는 보조를 하면서 던전 끝에 다다를 때까지 각자의 위치를 지킨다. 파트너의 실력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욕을 해서는 안 된다. 욕심이 나더라도 다른 사람의 아이템에 손대지 않는다. 다른 던전을 다시 찾아가기 귀찮더라도 누군가 플레이 중인 사냥터에 난입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게임 룰을 알려주기보다는 “님 초딩이셈? 즐!”을 외치곤 했다.


‘노 키즈 존’이라는 팻말을 걸고 있는 공간을 너무나도 쉽게, 자주 마주친다. 대개 ‘죄송하지만 다른 손님들의 편의를 위하여…’로 시작하는 안내문이 곱게 윤색한 버전의 “님 초딩이셈? 즐!”로 보인다. 시간과 돈을 들여 방문한 곳에서 ‘즐겜’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우리가 어린이에게 주어야 할 건 “즐!”이 아니라, ‘그룹사냥’에 끼워주고 ‘룰’을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은 규칙을 모를 수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 그랬고, 또 우리의 조카나 아들딸이 그렇듯이. 이 사실을 잊은 안내판을 보며 혼자 말해본다. “님도 즐!”이라고.


*월간 <환경과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Korea)>에 2022년 3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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