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상품기획이란?
나는 국내에서 들으면 대부분 알만한 가전회사에서 ‘상품기획자’로 일을 하고 있다. 간혹 상품기획자가 어떤 일을 하는 포지션이냐 라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때 마다 쉽게 설명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글로 한번 적어놓으면 어느정도 생각정리가 되지 않을까? 하여 적어본다.
가전이라는 필드를 떠나서 ‘상품기획’ 이라는 업무를 한마디로 정리해보면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켜 소비 행위를 불러 일으키는 일]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쉽게 얘기하면 사람들 지갑 열게 만드는 것을 기획하는 일. 사실 ‘상품’ 이라는 단어 자체가 상거래에서 거래되는 물건 이라는 뜻이지만, 요즘은 재화뿐만 아니라 서비스 조차도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이 맞기에 꼭 물건을 만들어 내는 행위라고 단정짓기에는 너무 협소한 정의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실질적인 나의 업무 롤(role)은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측면 보다는 재화를 만들어 내는 것을 기획하는 쪽에 훨씬 가깝기 때문에, 이후로는 물건을 만드는 것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룰 것이다.
물건을 만들어서 파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것을 먼저 정리해보면
1.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켜 줄 것
2. 합리적인 가격일 것
3. 나만의 독특함이 있을 것
4. 명확한 타겟이 있을 것
위 네 가지 정도가 딱 떠오르는데, 어떻게 보면 정말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면서도 정말 중요한 얘기 인 것 같다. 위 네 가지 요소를 조금 더 깊게 들어가보자.
1.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켜 줄 것
고객의 니즈란 무엇인가? 필요한 이유. 사실 물건이 필요해서 구매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많다. 이 상품을 구매하면 나의 생활이 조금 더 편해진다던지, 보기에 이쁘다던지, 나의 취향을 저격한다던지, 엄청 맛있다던지 등등, 니즈라는 단어로 순화했지만 욕구의 충족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이 욕구를 어떤 방식으로 충족 시킬 수 있느냐가 경쟁력 있는 상품을 기획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최근 가전업계에 ‘이모님’ 이 대 유행이다.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의류건조기 등. 이러한 가전 상품들의 공통점은 ‘내가 할 일을 대신해준다’ 라는 것이다. 기존에 집안일에 소비해야했던 내 시간을 가전에 맡겨 온전히 나만의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집안일을 하기 귀찮아 하는 기본적인 욕구와 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가전이라는 영역에서 만나 ‘이모님’ 열풍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또 다른 예시로 최근 몇년간 유행하고 있는 ‘한정판’ 은 어떤 욕구로 볼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물건을 나 혹은 나를 포함한 소수의 인원이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어떤 우월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상품을 가진 사람 혹은 그 상품 자체를 선망함과 동시에 소유욕이 생길 것이다. 한정판 아이템들은 이러한 고객의 욕구를 자극해 일반 상품보다 높은 가격에, 일부 수량만 팔더라도 오픈런을 하거나 긴 시간 대기를 해서라도 고객의 지갑을 열게 한다. (한정판 이라는 이유로 반드시 모든 상품이 높은 가격에 잘 팔리지는 않는다.)
결국 내가 플레이 하는 필드의 고객들의 어떠한 욕구를 자극 하였을 때 그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가 ‘고객의 니즈 분석’ 일 것이다.
2. 합리적인 가격일 것
여기서 합리적인 가격은 생산자-판매자-구매자 모두에게 합리적인 가격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말 특별한 컨텐츠를 가진 상품이 아닌 이상 100원에 만든 상품을 10만원에 판매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내가 정말 새로운 카테고리의 상품을 기획해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기존 동종 상품 시장 내에 형성된 적정한 가격이 있을 것이다. 그 가격 범위를 기준으로 하여 생산-판매에 있어 합리적인 가격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합리적인 가격’이 반드시 낮거나 저렴한 가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비데를 예를 들어보자.
A 비데는 일반 비데 / 제조원가 3만원 / 판매가 10만원
B 비데는 방수 비데 / 제조원가 3만5천원 / 판매가 13만원 이라고 가정하자.
표면적인 가격으로 보았을 때 B 비데가 3만원 비싸므로 A 비데 보다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B 비데는 3만원 비싼 대신에 고객들이 욕실 사용 환경에서 불편하다고 생각되었던 누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가 5천원을 추가하였다. 이 상황에서 ‘합리적인 가격’의 판단은 ‘방수 기능‘에 대한 고객들이 부여하는 가치가 얼마정도의 가격으로 환산되느냐에 달려있다. 만약 고객들이 방수기능이 별 필요없는데 A 비데 보다 3만원 비싼 비데를 만들었다면 전혀 경쟁력 없는 상품이지만, 방수기능이 너무 필요해 5~10만원을 더 주고도 방수 비데를 사겠다고 한다면 겨우 3만원 정도의 비싼 가격은 ’합리적인 가격‘이 되는 것이다. 또한 생산자 측면에서도 제조원가 5천원 써서 3만원의 추가 부가가치를 만들어낸 셈이니 생산자에게도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상품기획자는 이렇게 1번항의 고객 니즈를 발굴하여 그것을 제품에 녹여내서 부가가치를 가진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는 감각이 중요하다. 이러한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는 사실 많은 경험이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상품을 만들어내는 과정,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일 것이고, 시장의 트렌드와 고객의 니즈를 읽어내는 감각을 키워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3. 나만의 독특함이 있을 것
이 명제가 제일 어렵다. 디자인, 기능, 사용성 등에서 타 상품과 차별화 되는 나만의 독특함을 갖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특허권, 의장권, 상표권 등의 권리 보호에 대한 제도들이 생겨났을테지만 아무튼 진짜 어렵다. 너무 독특한 디자인은 오히려 고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 있고, 너무 독특한 기술이나 아이디어는 상품으로 구현해내기 어려운 수준인 경우가 많다. 혹은 기발하다! 고 생각했던 아이디어나 디자인이 이미 다른사람이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일 가능성도 매우 높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속에서 어떤 독특함이 나의 상품을 돋보이게 만들 수 있을까?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최근의 흐름으로 보면 두 가지 정도로 설명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컨셉 혹은 스토리가 담겨있는 상품이어야 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 내 눈앞에 스타벅스의 ‘been there cup(빈 데어 컵)‘이 놓여있다. 사실 스타벅스라는 상표 빨(?)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보다도 전 세계 주요 국가, 도시의 특징을 나타내어 그 도시에서만 살 수 있다는 컨셉 때문에 어떤 상징성을 추가로 부여하는 것이 주요한 포인트라고 본다. 이러한 컨셉이 수 많은 스타벅스 머그컵과 빈데어 컵을 구분하게 해주는 장치가 되고, 해외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스타벅스를 꼭 들려 빈데어 컵을 사는 사람들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둘째, 기존 상품의 틀을 깨는 상품이어야 한다. 사실 이 영역은 수 많은 아이디어 도출과 실패, 연구가 수반되어야 가능한 부분이긴 하지만 그정도의 노력이 있어야 정말 나만의 독특함을 만들어낼 수 있다. 삼성의 폴더블 폰의 경우에는 액정을 접을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접을 수 있는 스마트폰을 결국 만들어냈지 않는가? 딤채의 김치냉장고는 냉장고를 약간 변형, 한국화 하여 전에 없던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 냈다. 결국 이 두 상품의 공통점은 기존의 틀을 깨거나 변형시켰다는 것에 있다.
이 명제는 쓰면서도 사실 너무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 하지만 이 것을 실현해내는 것이 진정한 상품기획이자 상품기획의 꽃이 아니겠는가!
4. 명확한 타겟이 있을 것
마지막으로 내가 기획하는 상품을 구매하거나 사용하는 명확한 타겟이 있어야한다. 같은 연필이라도 성인용 연필과 아동용 연필은 길이나 디자인이 매우 달라져야한다. 브랜딩, 기획, 마케팅 관련해 주옥같은 책을 몇권이나 써내신 홍성태 교수님의 ‘브랜드로 남는다는 것’에서 이러한 타겟을 ‘뮤즈‘라고 표현한다. 이상적인 타겟 소비자. 이 뮤즈가 명확해야 어떠한 상품을 어떤 디자인, 어떤 기능을 넣어서 만들 것인지가 명확해진다. 그리고 뮤즈가 명확해야 판매, 마케팅 방향에 대해서도 명확해진다.
내가 기획해서 만들어냈던 제품 중 이렇게 타겟이 명확한 제품이 있었는데, 이름하여 ‘맘편한 가습기’ 이다. 이 제품을 기획할 당시 가습기를 주요하게 구매하는 고객은 집에 아기, 아이가 있거나 환자가 있는 고객이 대다수였다. 당시 가습기 시장은 가습기 살균제 여파로 시장 자체가 주저 앉은 뒤 서서히 회복해가는 추세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 고객층이었던 아이를 둔 부모, 환자를 보살피는 보호자라는 명확한 타겟을 설정하였고, 이들과 시장의 니즈였던 ‘간편한 세척’, ‘청결 관리’에 착안하여 스테인리스 수조로 되어있고 완전 분리가 가능한 가습기를 만들었고, 상품의 네이밍도 ‘mom / 마음’ 을 중의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맘편한’ 으로 지었다. 10만원 후반대라는 당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꽤나 잘 팔린 상품이었다.
이 상품을 기획하는 과정에 있어 니즈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니즈를 파악하기 전 이 상품을 사용할 타겟을 명확하게 설정하였기에 니즈를 상품의 요소로 구체화 할 수 있었고, 상품을 나타내는 이름까지 같은 맥락으로 설정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MASS(대중)적 가치가 중요하여 소수의 니즈는 크게 반영되지 않는, 대량 생산-판매 하는 상품들이 주요했다면, 이제는 DIVERSITY(다양성)적 가치가 중요해지는 사회로 변해가는 만큼, 내가 실질적으로 공략하고자 하는 타겟에 대한 명확한 설정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다.
쓰다보니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지만 이제까지 내가 가전 상품기획자로서 일 해오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들을 그나마 짧게 풀어내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바가 틀렸을 수도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얘기일 수도 있지만 내 나름대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걸 글로 표현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 뿌듯함도 느끼고 있다. (글로 풀어낸다는 것은 결국 객관화 작업이기 때문에..) 이 글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을지 모르겠지만 상품기획자를 꿈꾸고 있는 사람, 혹은 브랜드를 가지고 상품을 팔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간이 지나 이 글을 다시 복기해보면 내 생각이 또 바뀌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럼 안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