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고양이와 유산

by 조일

"야 씨발."


그 회의실은 대체로 그렇게 시작했다. 그곳은 창문이 없었다. 언젠가 굴욕을 당하던 직원이 투신을 한 뒤로 건물 전체의 창문 개방을 막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특히나 더 치욕스러울 그 회의실에 대해서는 그럴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당할 때는 내게 왜 그러는 것인지 이유라도 알고 싶었고, 곧바로 다시 이직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상사에게 그들과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는 '그놈들이 다 성골, 진골이야. 나중에 우리 위로 올 사람들이니 잘해.' 하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딱히 이유가 없어도 그래도 되는 사람들이었다.


"아 씨발, 네 엄마가 보고도 딱 알 수 있게 쓰라고."


숙제거리를 다시 잔뜩 받아가는 뒤통수에 욕이 박힌 채 부서로 돌아갔다. 고양이 같이 얼룩진 얼굴을 상사는 못 본 척 파티션 아래로 몸을 낮추었고, 나는 자리에 앉아 꾸역꾸역 보고서 파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이어서 누군가 다가와 알은체를 했더라면 몹시 당혹스러울 것만 같았다.


그날은 유독 속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파서 말없이 자리를 비우고 정동길을 걸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그 보고서를 어떻게 마무리지을지 고민뿐이었는데, 정작 회사에선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누군가 이런 상황들에 대해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눠주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렇지만 나는 이럴 때에 연락할 곳이 없었다.


그즈음부터 뜬금없이 공포감에 휩싸이거나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들이 들곤 했다. 그럴 때면 미처 시작도 못한 보고서를 붙잡고 새벽까지 모니터 앞에 앉아 커피만 들이붓기 일쑤였고, 그래놓고는 심장이 쿵쿵거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회사에서 일은 안 하고 게임하듯 약한 부분들을 공격하며 업무를 방해하는 그들이 점점 참기 힘들어졌다. 돌아보면, 일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며 망상을 부풀려간 것은 나 또한 그들과 같지 않았나 싶다. 억울한 사람 천지인데 공짜 점심은 없는, 그저 그런 보통의 직장생활이었을 뿐인데 나는 너무 몰입해 있었다.


*


아스팔트에 아지랑이가 올라오던 한 여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경찰서 일을 정리하고, 아버지 거주지를 수소문하여 열쇠를 따고 들어가 놓인 짐들을 아무렇게나 고물상에 넘기고...... 그러다 문득 혼잣말이 나왔다.


'나, 이제 그만해도 될까......'


그해겨울, 머리를 한 정신 나간 대통령이 탄핵되더니, 그룹은 전략실을 해체한다고 발표했다. 그곳 사람들은 자신들이 괴롭히던 각 계열사로 발령이 났고, 그 정말 내 위로 왔다. 그와 같은 공간에서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하는 장면을 보았고, 그는 혀를 끌끌 찼다.


"여자들은 정치를 못해서 문제야."


나는 한 달사표를 냈다. 내가 왜 그만두는지 도저히 이해 못 하겠다는 그는, 자기가 오자마자 그만두면 직원들이 보기에 좋지 않으니 일 년만 더 다니다가 그만두라고 했다. 리고, '가정이 없는 여자들은 이래서 문제야.'라고 했다.


'내가 고아입니까? 내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습니까? 가정 있는 여자들은 회사에 충성하지 않아 싫다면서요.'


이 말이 속에 맺혀서 불덩이가 되는데도 나는 여전히 뱉지를 못했다. 그런 일에 참도록 훈련되어 있을 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지막까지도 몰랐다. 속이 뜨거워지는 그런 감정들이 두려웠다. 그저 매일이 지치고, 피곤했고, 못나기만 했다. 그런 류의 작고 가벼운 우울 무력감을 안고 결국 그 회사를 나왔다.


퇴사 후에도 그와 회사는 여전히 무탈하였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고, 껍진거리는 기억들에 붙어 심란한 꿈들을 꾸었다. 그 대비되는 처지는 마치 그들이 옳았고 내가 실패했음을 세상에 알리는 증거인 것만 같아서 매일 주눅들어지냈다. 나는 이제 그런 일들이 두려웠다. 전전긍긍하는 것에 지쳤고, 스스로 패배자 취급을 해도 되는 사람인 내가 싫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온종일 수성동 계곡에만 머물렀다. 그곳에서 엄마에 대한 측은함과 아빠에 대한 미움으로 버텨냈던 삶과 딱 5년만 참고하자 다짐했던 일이 결국 20년을 넘어서며 나 자신이 되어버린 것, 그러다 갑자기 죽어버린 관계 같은 것들을 생각했다.


한참을 그렇게 못나게 굴고 나니, 스스로 '이제 그만 가자' 하고 결심하게 되는 날이 왔다. 살던 오피스텔을 내놓고, 마당에 큰 모과나무가 있는 집 3층에 세를 얻었다.


한여름, 엉덩이 털이 흉하게 엉켜있는 고양이가 마당에 나타났다. 다가가면 도망가면서도, 나를 돌아보며 애옹애옹 서럽게 울어댔다.


'여기 있어봐.'


편의점에서 닭가슴살을 사다가 조금씩 뜯어서 던져주었고, 며칠 뒤에는 손으로 직접 조심조심 먹였다. 그다음엔 아예 문 앞에 아침과 저녁 두 번 사료와 물을 챙겨주었다. 꼬드득 꼬드득 거리며 먹는 소리가 좋아 가까이서 지켜보다 보면, 녀석의 떡진 목덜미가 측은했다.


'아빠도 이랬을까.'


그러니까, 아빠도 저렇게 매일이 위태로웠을까? 나는 왜 계속 같은 곳이 쓰라린 걸까? 시간이 지나도 왜 아물지 못하고 덧나기만 하는 것일까.....


그 질문들 속에서 인생은 너무나도 짧고 허무하다는 것, 그 깨달음을 아버지가 내게 유산으로 남겼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음에 든든함을 느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뒤통수에 붙은 미움을 쫒으며 살지 않아도 되었다.


내 홀가분함 속에서 녀석은 보송보송해졌고, 밥때가 되면 매번 짧은 다리로 당당당당 거리며 마당을 가로질러 찾아왔다. 고양이 그릇을 뽀득뽀득 씻고 사료 안에 템테이션이나 츄르 따위를 숨겨놓고 두근거리며 기다리는 것 외에는 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고단하지 않았고, 과나무 아래 단란한 가을을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 그 집에 누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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