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사람들

by 조일

엘리베이터 안은 사람이 가득했다. 나는 앞에 붙어 선 여자의 풍성한 머리카락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내가 저럴 때가 있었나, 아득한 기억 속을 더듬었다. 3층에 이르자, 그녀는 손에 쥔 숄더백을 어깨에 끼우며 몸을 휙 돌렸다. 순식간에 그녀의 루이뷔통 팔레르모에 내 링거 선들이 걸렸다.


'앗'


허겁지겁 선들을 잡았다. 그녀는 다시 한번 몸을 틀어 내렸고, 나는 뒤로 납작하게 피했다.


"아따 조심들 좀 하씨요. 여그 환자들 죄 요래 목숨줄 달고 서있는 거 안 봬요."


같은 방 전라도 여사님이 비니아래 퍼런 눈썹 문신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퉁퉁 부은 검은 얼굴 때문에 인상이 몹시 해 보임에도, 그녀의 볼멘소리에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7층에 도착하자 여사님은 어서 내리자며 팔을 잡아끌었다. 그녀의 다 들뜬 손톱 끝에 맺혀있는 굳은살들 내 속을 꾹 눌렀다. 늘 더 아픈 사람이 덜 아픈 사람을 먼저 발한다. 절룩이며 다가와 다정한 구원을 내민다.


7층은 온통 삶의 몸통이 잘려나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남은 삶에는 온갖 약물들이 뿌려진다. 독한 약들이 혈관을 태워버리면, 쇄골 아래 케모포트를 심어 욱여넣는다. 애써 키워낸 좋은 가지들이 맥없이 훼손되며 말라죽는 것을 본다. 몸통이 없으니 이제 가지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픔에 소용돌이치는 그 속에도 뼈와 살이 있고, 혈액과 림프가 흐른다. 상처를 빼곤 삶에 아무것도 없는 시람처럼 굴면서도, 잘려나간 몸통에 새순을 낸다.


모두 실체와 정신이 있는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이유는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


예전 나는 ‘정상’의 극소수만 보았다. 다른 색깔의 삶과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했다. 나와는 다른 세계의 존재라 믿었으니까.


그러다 시신경 문제 시야가 흐려진 뒤야, 오히려 전에는 보지 못했던 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폐지를 싣고 가는 이의 앙상한 팔꿈치를 보고도 눈물이 폐지 차올라 숨이 막혔다.


나를 오래 보아온 선배 말했다.


"몸이 그렇게 망가졌으니 인생이 끝난 것 같을 거야. 그 패배감, 견디기 힘들겠네."


선배 이제 나를 보지 못한다. 눈물주머니가 부풀지 않은 사람들, 그래서 영영 나를 보지 못 사람들.


역시나, 나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더 본다고 반드시 좋은 건 아니었다.


*


저녁밥을 물려놓은 내 침대로 여사님이 불쑥 들어와 휴게실로 끌었다. 7층 장기투숙(?)자들이 가득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을 본다. 이미 부풀었다 줄어든 주머니들. 대체 얼마나 꾹꾹 눌러켰기에 이다지도 작해졌을까.


간호사가 떨어져 앉으라 했지만, 우리들은 단란하게 붙어 앉아 낄낄 웃었다. 화목한 우리의 토요일 밤이 지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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