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안에서
2024.2.26.
by
친절한 James
Feb 26. 2024
"딸깍."
동그란 손전등에서
기다린 빛이 뻗어 나왔다.
엄마 아빠의 겉옷과 바지, 셔츠가
밀림 속 나무처럼 위로 솟았다.
숲 속 나무들은 땅에 뿌리를 내리는데
여기 옷들은 위로 뿌리가 난 것 같아.
T는 옷걸이가 옷의 뿌리라고 생각했다.
나무와 달리
땅에서 하늘로 자라는
'옷나무' 들이지.
무지개처럼 하늘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은빛 철제 봉에
걸리게끔 이어주는 매개체,
철사와 나무, 플라스틱으로 만든 꾸러미.
내가 없을 때는 서로 말도 하지 않을까.
자기가 걸고 있는 옷에 대해,
지금껏 스쳐간 옷들에 대해,
옷 주인의 특징에 대해.
T는 불빛을 요리조리 비추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종종 옷장 안에 들어와
문을 닫고 불을 켜보곤 했다.
태어나기 전에는 엄마 뱃속,
자궁 속에서 자랐다고 배웠는데
거기도 여기처럼 어두웠을까.
그랬겠지, 기억은 나지 않아도.
그래서일까, 여기 들어오면 편안했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날에는 더 그랬다.
그럴 때 T는 작고 통통한 손으로
거실 손전등을 쥐고
옷방으로 달려갔다.
옷장 문을 열고 그 속에 몸을 숨겼다.
아마 작년부터 그랬던 것 같다.
거기에서는 고함 소리도 작게 들리고
슬픈 몸짓도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다 잠든 적도 있었다.
T의 옷은 서랍장에 있었다.
아직 옷장에 걸만큼 크지 않았다.
T는 내 옷들이 언제쯤 옷걸이에 걸릴까
생각했다. 그때쯤이면 엄마아빠가
싸우지 않고 잘 지낼까.
돈 문제는 더 이상 없을까.
왜 어른들은 돈 때문에 목소리를 높일까.
돈이 원수라고도 하고
네가 문제라고도 하는데
그럼 다 나쁜 걸까.
돈은 왜 항상 부족할까.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가 주시는 용돈을 잘 모으면 될까.
일을 열심히 하면 될까.
언제 일할 수 있을까.
무슨 일을 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할까.
T는 옷장 구석, 제습제 뒤에 감춰둔
딸랑이 인형을 꺼냈다.
아직 T가 돌이 되기 전
애착인형으로 썼다고
엄마가 말해 줬었지.
"너는 돈 걱정 없어서 좋겠다."
인형은 딸랑거리며 웃었다.
"너는 엄마아빠가 없니?"
인형은 말이 없었다.
"너도 엄마랑 아빠가 많이 싸우니?"
인형은 고개를 돌렸다.
말하기 싫은가 보다.
T는 비밀 장소에 인형을 다시 숨겼다.
옷거리에 걸린 옷들을 만져보았다.
부모님의 온기가 아직
배어 있는 것 같아.
서로 안 싸우고 잘 지낼 수는 없을까.
T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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