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듣는 블루스 곡

2024.3.2.

by 친절한 James


"뚜두두 바바, 뚜바뚜바,

빠빠빠 바밤 빠바밤 ~ ♬"

야, 좋은데. 너무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살아 움직이듯 부드러운 리듬감,

통통 귓가를 간질였다.

한밤중 듣는 블루스 곡,

이런 낭만, 처음 알았다.


퇴근이 기다려지는 금요일,

지루한 오전 일과가 저물고 있었다.

업무는 평소보다 좀 일찍 끝났다.

오늘은 밖으로 나가볼까,

W는 오랜만에 사무실 근처

S 백반집을 찾았다.

싸고 맛도 괜찮은 곳인데

그동안 구내식당만 다녔다.

며칠 전 여기 시그니처 메뉴

수제 떡갈비가 생각나서 왔는데

아, 이미 자리가 꽉 차버렸다.

다른 식당에 가야 하나.


입구에서 서성거리던 W를 보고,

반찬을 나르던 직원이 말을 걸었다.

"혼자 오셨나요?"

"네."

"지금 1인석 자리는 다 찼는데

혹시 합석 괜찮나요?"

"아.. 뭐, 네."

직원은 카운터 대각선 맞은편

구석 자리에 등을 지고 있던

한 손님에게 다가갔다.

"혹시 합석 괜찮나요?"

"네, 좋아요."

"손님,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W는 숙제를 안 하고

수업에 들어온 아이처럼

빈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에는 검은색 티와 청바지,

운동화 차림의 할아버지가 있었다.

아직 음식은 안 나왔나 보네.

짧고 하얀 턱수염이

민들레 씨앗을 닮았다.

W는 가벼운 목례를 하고

왼손에 들고 있던 책을

식탁에 내려두었다.

그러자 그 할아버지는

눈을 반짝이며 말을 걸었다.


"재밌는 책이네요. 클래식 좋아해요?"

"네? 아... 네. 잘은 모르는데

출퇴근 길에 라디오로 들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

클래식 애호가들도 꽤 있더라고요.

나도 좋아해요."

"네에."

"그런데 난 블루스 음악을 자주 들어요.

뭐랄까, 화창한 슬픔이 아름답게

춤을 추는 기분이랄까. 내재한 아픔을

그저 비관하지 않고 선율의 어깨너머로

풀어내는 느낌이랄까, 뭐 그래요.

에릭 클랩튼 알아요?"

"네, 영국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지요.

저도 학창 시절 많이 들었어요."

"오호, 그래요. 말이 잘 통하네.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데요.

'40년 넘게 블루스 음악을 한 건

현세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랍니다.

태어나서 처음 들은 음악이 블루스였고

방황하던 사춘기에도 의지할 것은

블루스뿐이었어요. 내 언어와도 같은

이 음악의 순수함을 믿어 왔고

언제까지나 그럴 거예요.'

어때요, 멋지지요?"

할아버지의 수수한 옷차림만 보고

별생각 없던 W는

어느덧 대화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분, 뭐 하시는 분일까.


"그건 처음 알았네요. 그런데 궁금한 게,

블루스 음악이 정확히 어떤 건가요?

재즈와 비슷한 건가요?"

"오, 좋은 질문이에요. 블루스와 재즈,

이를테면 주먹인사를 나누는

오랜 절친 같은 사이라고 할까요.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아서

비슷한 점도 많지요.

어떤 사람은 블루스를 재즈의

한 종류로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블루스에서

재즈가 생겼다고 하기도 해요.

장르를 따지기 보다 음악을 듣고

인생에 풍성한 감성을 더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제가 블루스를 잘 몰라서 그런데

혹시 추천해 주실 음악이 있나요?"

"아, 드넓은 푸른 바다 같은

블루스의 세계에 들어오시려는군요.

요즘은 음악 듣기 참 좋은 세상이지요.

유튜브에서 정말 많은 음악을

찾아 들을 수 있으니까요."

대화를 이어가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할아버지는 순두부 백반을 시키셨네.

"어르신, 이것도 같이 드세요."

W는 떡갈비를 새 숟가락으로 잘랐다.

"아고, 괜찮아요. 젊은이 많이 먹어요.

난 고기를 잘 안 먹어서. 아무튼 고마워요."

그는 사양하고 말을 이어갔다.

"사실 음악은 주관성이 강한 영역이죠.

내가 좋은 게 남들도 좋아하진 않으니.

추천 블루스라. 어디 보자,

'3 킹'이란 말이 있어요.

비비 킹, 앨버트 킹, 프레드 킹.

다 좋은데 그중 비비 킹은

블루스 음악의 대부라고 하죠.

비비 킹의 <The Thrill is Gone>

한 번 들어봐요. 그리고 비비 킹이랑

에릭 클랩튼이 함께 한

<Three O'clock Blues>도 좋지요.

훌륭한 음악과 뮤지션은 참 많은데

일단 이 정도 들어보고 느낌을 잡아봐요."


신기한 인연이다.

처음 본 할아버지로부터

블루스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니.

W는 퇴근해서 저녁 먹고 책상에 앉았다.

노트북을 켜고 유튜브에서

블루스를 찾아보았다.

와, 정말 많은 음악이 있구나.

지금까지 한정된 음악을 들은 것 같아.

카세트테이프와 CD로

가요나 팝을 주로 들었지.

MP3로 영어 듣기 파일을

공부하던 추억도 떠오르네.

PMP로 인강 듣던 시절도 있었는데.

아, 아무튼 요즘은 유튜브로

이런저런 장르를 쉽게 접하지.

대단한 세상이야.

그분은 오디오를 직접 만들어서

듣는다고 하셨어. 40년 넘는 세월 동안

블루스 음악을 듣다 보니 음향기기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고.

작년에 만든 진공관 앰프는

수백만 원 시판품보다 낫다고

자부하시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운전 배우는 것처럼

별로 어렵지 않다고 하시던데.

참 세상은 넓고 신기한 게 많다.


음악을 듣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내일이 쉬는 날이라 다행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건

음악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앞으로 더 다양한 음악을 들어보자.

이것만 듣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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