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3.9.
"와, 안개가 엄청 심하네."
"그러게, 앞이 안 보여. 조심해."
새벽부터 짙은 안개가 그들을 둘러쌌다.
잠에서 깨어 창밖을 봤을 때는
그저 옅은 수채화였는데
묵직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아주 짙은 유화 같은 풍경이었다.
뒷모습이 닮은 두 사람은
강렬한 인상파 작품의 일부가 되었다.
강원도와 경기도의 경계
그 어디쯤 자리한 이곳,
산림의 물결이 그윽한
작지만 아늑한 휴양지,
친한 친구에게 추천받은 숨겨진 명소.
두 사람은 새해맞이 장소로
이곳을 방문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로이
쉬었다 가기 좋은 곳이네.
여기 오길 참 잘했다.
또 와도 좋겠어.
두 발, 아니 네 발은
뽀드득뽀드득 느린 걸음을 옮겼다.
발목까지 잠기는 백설의 들판,
사방은 천둥처럼 고요하고
시야는 바다처럼 아련했다.
하얀 바다 심해를 헤엄치는 것 같네.
숙소 뒤편 오솔길을 따라 동산을 오르고
해맞이를 보기로 했는데
이런 날씨에 일출을 볼 수 있을까.
해가 뜨면 안개가 사라지긴 할 텐데.
그들은 호빵 같은 입김을 호호 불면서
작은 걸음을 이어갔다.
눈은 소리를 흡수한다고 했다.
그래서 눈이 오면 다른 날보다 조용해.
그런 것 같다. 이따금 울리는
두 사람의 말소리와 발자국 소리,
숨소리를 빼면 별다른 기척이 없었다.
고라니가 종종 나타난다고 했는데
아직 보지는 못했고 흔적도 없었다.
하긴 당장 눈앞만 보면서
조심스러운 발길에만 집중하기에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기는 하다.
한 걸음 앞만 겨우 보이는 시야,
두려울 수도 있지만 걱정하지 말자.
불안하다고 길이 더 잘 보이는 것도,
안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
길은 어디 가지 않아.
우리가 바라는 곳까지
이어져 있을 테니까.
단지 우리가 먼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걸음을 더하고 시간이 쌓일수록
안개는 조금씩 옅어졌다.
지나간 세월 속 근심도, 아픔도
그렇게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드디어 다다른 언덕 정상.
유명한 곳은 아니더라도
뿌듯함이 두 사람의 가슴을
훈훈한 감정으로 채웠다.
언제 해가 뜰까.
그들은 손을 맞잡고
안개 너머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향기로운 기대가 피어났다.
희망 같은 햇살이 떠올랐다.
햇살 같은 희망일까.
아무래도 좋다.
어쩌면, 올해에는
그토록 바라던 소망이
이루어질 것 같다.
구체적인 방법은 모른다.
하지만 이건 안다.
보이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보인다는 것을.
결과를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숙명과 운명 타령은 그만두어야지.
현재가 미래를 결정하지는 않고
이젠 더 이상 과거에 살지도 않아.
과정이 좀 느릴 수는 있어도
변화는 반드시 일어난다.
안개 사이로 보이는 것,
그것은 이미 이루어진 미래,
바로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