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말을 엿듣는 중이다

2024.5.14.

by 친절한 James


"글쎄, 그렇다니까. 어쩜 그럴 수 있는지...

아주 자기만 잘났어, 안 그래?"

"우리 아까 먹었던 파스타 괜찮았던 것 같아."

대화의 기포가 곳곳에서 웅성거리며

톡톡 터져나가는 현장의 한가운데,

Y는 주말 오후 카페에 앉아

아메리카노 잔을 쓰다듬고 있었다.

아직 모락거리는 가녀린 김처럼

자리 곳곳에서 피어오른 말들은

허공을 떠다니다 훌쩍,

보이지 않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약속 시간 10분 전에 도착했는데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그 사람, 무슨 일이 있나.

전화도 안 받고 메시지도 안 읽네.

그러다 방금, 일이 생겨서

못 나온다는 연락을 받고

Y는 망연자실 앉아있었다.

그럼 미리 말을 하지 그랬어.

분명하지 않은 이유, 더 캐묻고 싶었는데

그만두자.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요즘 연락도 뜸해지고 뭔가 있는 걸까.

바람맞은 건가. 식어가는 찻잔처럼

우리의 관계도 그렇게 되는 건가.


Y는 눈을 감았다. 조금 어지러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의 고리를 끊자.

도착해서 읽고 있던 시집에 다시 눈길을 던졌다.

한 글자씩 집중해보려고 했다.

시선은 백지와 검은 글자 사이 어느 여백 사이로

빨려 들어갔고 마음은 호로록 펄럭였다.

내용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지.

책을 덮으려니까 기분이 울적했다.

보호막이 사라져 버릴 것 같아.

처량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날 것 같아.

책장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니

주변의 소리가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일면식 없는 낯선 이들의 이야기,

어떤 건 애달프고 어떤 건 흥미롭고

또 어떤 건 별 의미 없었다.


Y는 지금 눈은 책에,

귀는 주변에 기울이며

남의 말을 엿듣는 중이다.

조금 기분이 나아진 걸까.

커피가 다 식었다.


https://youtu.be/4_Vi974KoSw?si=TCST2l0wX3WzA7fn

남의 말을 엿듣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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