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빛을 찾아서'-라리사 스즈폴럭의 작품에서
2024.8.25.
by
친절한 James
Aug 25. 2024
B와 H는 단짝이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녔다.
성인이 되어 각자 다른 진로를 걷고
멀리 이사 갔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만났다.
그런 시즌 모임도 20년 가까이 이어졌다.
차분한 B와 활달한 H는 서로를 잘 채워줬다.
B는 계획을 잘 세웠고 H는 추진을 잘했다.
B는 정보력이 좋았고 H는 응용력이 좋았다.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가족처럼 가까운
두 사람에게 올해 변화가 찾아왔다.
B는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고
H는 장기 해외 출장을 가게 되어
당분간 만나기 어려워졌다.
이번 여름 약속은 바닷가에서 만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함께 기차 여행을 왔던 곳,
지난 추억으로부터 지금의 삶과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꿈까지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시간 참 빠르다.
우리의 이삼십 대가 저물어 가네."
수평선에 잠기는 노을을 바라보며
B가 말했다.
"그러게, 많은 일들이 있었지.
웃고 울던 날들이 벌써 저만치 멀어져 갔어."
H가 황금빛 윤슬을 가리키며 말했다.
애잔한 물결이 가슴에도 넘실거렸다.
"너, 기적을 믿니?"
"기적? 글쎄...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니까
있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기적의 놀라운 점이 뭔 줄 알아?"
"발생하기 어렵다는 거?"
"아니, 기적의 놀라운 점은,
실제로 생긴다는 거래. 불가능이 아니란 거지.
가능의 영역이라는 거야."
"그치만 기적이 매일 일어나는 건 아니잖아."
"과연 그럴까?"
B는 가끔 이런 질문을 했다.
H는 가끔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신선한 느낌을 받고 생각을 정리할 때도 많았다.
"네 말도 맞아.
나를 기다리는 '먼' 기적도 있지만
나를 둘러싼 '가까운' 기적도 있는 것 같아.
불가능한 빛을 찾아 나선 여정 속에서도
기적은 공기처럼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고."
B는 모히토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뭐, 일종의 무심한 왈츠랄까.
아무튼 기적이라는 축배의 노래는
결국 울려 퍼지기 마련이니까.
기적이라는 아름다운 섬은
광대한 바다 한가운데 있어서
그걸 찾으러 떠나지 않으면 알 수 없어.
그런데 그 길에서 내가 알게 된 건,
기적은 어딘가 있을 보물섬보다
지금 떠 있는 바다 그 자체라는 거야.
일상이 기적이고 그 속에는 좀 더 특별하고
드문 경우도 생기는 거 아닐까?"
"그러니까 작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니까 작가이듯, 기적이란
드문 게 아니라 드물어서 기적이라는 거네.
그런데 그런 드문 기적도 있지만
우리가 잊고 지내는 평범한 기적도 있고."
H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불가능한 빛을 찾아서 떠나는
열정, 용기, 의지, 끈기가 모여서
기적을 찾기도, 만들기도 하겠네."
"그렇지, 그럴 수 있지."
해가 바다에 가라앉으며
마지막 빛을 뿜어냈다.
그렇게 그들의 청춘도 잠들어 갔다.
불가능한 빛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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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공기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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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해지는 풍경을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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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빛을 찾아서'-라리사 스즈폴럭의 작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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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에 서 있는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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