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해지는 풍경을 써라
2024.8.24.
by
친절한 James
Aug 24. 2024
구슬피 꿈틀거리는 깊은 침묵.
4평 남짓한 보금자리.
M은 몸에 딱 맞는
매트리스 위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얼음이 녹아 물이 되고
바닥에 깔린 종이에 스며들듯
M은 기운이 몸에서 녹아 나와
땅으로 빨려드는 기분을 느꼈다.
배에서 들락거리던 숨은 가슴으로,
목으로 점점 올라왔다.
머릿속은 멍하고 둔탁했으며
팔다리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숨이 차오르며 헐떡였다.
눈동자가 떨리며 힘을 잃어갔다.
바람이 창문을 흔들었다.
T는 매트리스 옆에 앉아 두 손으로
M의 왼손을 살며시 잡았다.
뼈만 남은 가늘어진 마디들.
참 많은 일을 했던 관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몰아쉬는 숨은 이와는 반대로
얇은 목가죽에 솟은 힘줄 위에서
힘겹게 떨리고 있었다.
T는 잃어가는 환상을 읽어내려고,
M은 희미해지는 숨결을 붙잡으려 애썼다.
한 달 전 M은 T에게 말했다.
"살아보니, 인생은 참 불확실해.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언젠가 찾아올 죽음이잖아.
죽음에 대한 준비는
더 나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
말고는 다른 게 있을까.
후회 없는 당당한 마지막을 맞이하려면
삶을 잘 살아왔어야 해."
몸이 불편하고 말도 힘들어하던 M이었다.
그날은 컨디션이 좀 괜찮았던 것 같다.
평소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이날은 좀 달랐다.
"지금 아니면 말을 못 할 것 같아.
그동안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또 행복했어.
당신이 가끔 미울 때도 있었지만
참 고맙고 보람 있는 인생이었어.
고맙고 사랑해."
T는 놀랍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했다.
아프기 전처럼 말을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쉬었음'이 '쉼 없음'이던 현실은 이제 끝인가.
M은 숨이 무거워지는 만큼 몸이 가벼워졌다.
눈앞이 희미해지는 만큼 의식이 밝아졌다.
맑은 음악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어린 시절 어디선가 들었던 종소리.
종소리가 선율로 이어지네.
첼레스타 음색을 닮았다.
천상의 음악이 이런 걸까.
가까이서 들리네.
뭔가 삐끗, 실수를 했나.
아니, 이건 틀린 음이 아니야.
이어서 연주하는 음이,
앞의 음을 맞게도, 틀리게도 할 수 있지.
삶도 그런 거야.
이제 숨이 혀끝에 닿았다.
비탈길 앞에 서 있는 위태로운 바위처럼
이젠 다 놓아버리고 내려가야 할까.
아들이 오고 있다는데 볼 수 있을까.
눈앞이 새하얗다.
영원의 시간으로 건너가는 걸까.
안녕.
모든 풍경이 희미해졌다.
희미해지는 풍경을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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