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에 동네 맘 카페에 독서모임 멤버를 모집한다는 글을 하나 올렸다. 그때부터 지역에서 독서모임을 해보고 싶었다. 이미 있는 모임은 거리가 멀거나 평일 오전시간에 모여서 직장 다니는 내가 참여할 수 없는 모임 뿐이어서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용기를 냈다. 몇몇 관심을 보이는 댓글은 있었어도 참여의사를 밝혀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고, 나 역시 마음을 접었다. 그저 때때로 열리는 여기저기의 북클럽을 찾아 떠돌이로 지냈다.
시간은 일 년, 이 년, 삼 년이 훌쩍 지났다. 산을 깎고 논을 뒤엎어 내가 사는 동네 근처로 여러 아파트들이 생겨나고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혹시 책모임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다시 한 번 용기내어 무작정 지역 카페 두 군데 글을 올렸다. 이번에는 4년 전과 달리 적극적은 의사를 밝히는 사람들이 5명이 넘었다. 그래, 뭐라도 시작해보자. 일단 저지르고 보자!
그렇게 독서모임이 시작되었다. 비경쟁독서토론, 엄마들의 책읽기, 함께 읽고 삶을 나누기를 모토로 1월 5일 첫 모임을 시작한 이래 그림책 2권, 한국소설 3권, 에세이 2권, 인문교양서적 2권, 총 9권을 함께 읽었다. 이제 10권째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그간 들고 나는 사람들도 꽤 있었고, 잠시 쉬어가는 사람, 연락이 끊긴 사람,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더해져 총 6명이 멤머가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나를 포함해 3명만 참석할 때가 대부분이지만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각자 삶의 자리에서 완독하려 노력하고 조금이나마 읽은 감상을 나누려고 애쓴다.
아무래도 갓난 아이들, 5살 미만의 유아를 키우는 엄마들은 쉽게 용기를 내지 못한다. 현실적으로 아이를 돌보느라 책읽을 시간이 부족하고, 잠깐의 여유가 생기면 피로한 육신을 쉬게하는데도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거기다 아이를 몇 시간 정도 때어놓고 책읽기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자녀가 두 셋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남편과 육아, 가사분담이 잘 되더라도 쉽사리 아이를 맡기고 이주에 한 번 고정적으로 책모임에 참석한다는 것은 엄마에게도 엄청난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경제적인 이득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생존에 필요한 모임도 아닌데 책모임에 우선 순위를 두고 꾸준히 참석하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 모임에 5살, 7살 자매를 키우는 분이 새로 참석하셔서 하신 얘기가 기억에 남는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동안 책을 읽지 못하는 순간들이 가장 힘들었다고. 나도 그랬다. 나라는 인간의 바닥을 경험하는 게 육아였다. 그래서 육아로 인해 피폐해지는 엄마들에게 책이 위뢰가 되고 힐링이 되기를 바랬다. 함께 읽기가 그야말로 엄마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되기를 바랬다. 책모임이 그 자체로 응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주에 한 번 엄마들과 책으로 소통하고 있다.
모임에는 평소에도 책을 좋아하고 꾸준히 읽어온 분도 있지만, 독서모임 자체를 처음 경험하시는 분, 평소에 책을 읽지 않아서 찾아왔다는 분들도 계신다. 천천히 읽기 근육을 키워나가면서 책과 가까워지도록 읽기 수월한 책, 마음에 다가오는 책들 위주로 읽어나가고 있다. 남녀관계로 치자면 썸을 타기 직전의 관계랄까. 서로의 거리를 재어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보면 점차 더 다양한 책, 여러 시선을 지닌 책들을 무리없이 읽을 날이 올거라 기대한다. 나와 다른 관점의 책을 읽으며 불쾌한 경험도 해보고, 저자의 날카롭고 뾰족한 시선이 빛나는 책을 통해 가치관이 깨지고 확장되는 경험도 가능하겠지. 넘치는 위로와 감성을 부어주는 책들로 서로의 마음을 쏟아낼 수도 있을거다. 일 년, 이 년, 삼 년이 흘러도 계속 모임을 만들어가고 싶은 이유다.
이번 주에는 몸과 운동에 대한 자극을 기대하며 '마녀체력'을 읽고 있다. 어제 한 분에게서 '읽다가 당근으로 자전거를 검색했다'는 메세지가 왔다. 함께 읽는 책이 우리에게 의미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