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도 안 나는 까마득한 어느 날 밤에
제가 참 좋아하는 책입니다. 백석의 시도 아름답고 김세현의 그림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큰도령 대여섯살 무렵까지 참 많이 읽어줬던 책인데, 작은 도령한테 읽어주지 못하고 그냥 책꽂이에 꽂혀만 있었습니다.
오늘 자기 전에 한 권 읽어주려고 골라오라고 했더니 작은 도령이 어디서 찾았는지, 이거, 하며 들고왔어요. 뭐가 마음에 들어서 골랐을까.
첫 장면, 작고 귀여운 준치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가시없는 고기, 준치.
-준치 정말 귀엽지? 큰 눈도 귀엽고. 그런데 왜 가시를 갖고 싶어했을까?
-그러게, 그냥도 귀엽고 좋은데. 나는 그냥 준치가 더 좋아보이는데.
작은 도령은 말 없이 듣기만 합니다.
가시 많은 고기들을 찾아가 가시를 달라고 하자 여러 고기들이 자신의 가시를 뽑아 준치에게 꽂아줍니다.
- 가시가 생기니까 준치가 어때보여?
- 창 같애
-그렇구나 창 처럼 보이는구나
- 나는 그냥 준치가 귀여워서 좋았는데, 이렇게 가시가 생긴 모습을 보니까 또 멋져보이고 강해보여, 준치가 좋아하는거 같아.
-그런데 고기들이 자꾸자꾸 쫒아가면서 꼬리에 꽂아줘서 꼬리에 가시가 많아졌대. 구워먹을때 가시가 많아서 사람들이 싫어했는데, 이런 사연이 있어 생긴거니까, 준치를 나무라지 말래.
-나물지가 뭐야?
-혼내는거지
-혼내는게 뭐야? ㅎㅎㅎㅎㅎ
큰도령은 옛날에는 글을 몰라서 그림만 보고 봤었는데, 이제 내용을 더 잘 이해하겠답니다. 어릴 때 그림 본 기억이 난다고, 몇 살때 엄마가 읽어줬냐고 묻습니다. 엄마 이야기에 댓거리도 더 많이 하고 이야기도 풍부하게 거듭니다.
형아과 다른 기질과 성향의 작은도령은 책 보다 엄마가 물어보는 말들에 잘 대답을 안 합니다. 뒷부분에 어떻게 됐을까? 하고 궁금즘을 일으켜보려하면 얼른 뒷 장을 펼치려합니다. 오늘도 엄마 질문에 간단히 하나 말하고 맙니다. 더 많이 눈 마주치고 더 많이 안아주고 놀아주며 책을 읽어줄 수 있는데, 엄마가 참 많이 잃어버리고 삽니다.
작은도령은 준치가시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다음에도 아이와 함께 보며 나누고 싶습니다.
ps- 큰 애는 동생이 있어 열 살 나이에도 엄마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옆에서 껴서 같이 뒹굴거릴 수 있네요. 어릴때 보던 책을 커서도 보면서 성장을 체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큰 애와 달리, 작은 애는 이 순간이 끝일텐데. 더 커서 엄마와 함께 책 볼 날이 없을텐데 싶으니 참으로 아쉽습니다. 아무래도, 그림책 정리는 5년은 멀었나봅니다. 작은 아이와도 이런 순간을 누려보고 싶네요.
그러니까 이 글이 2016년 10월 10일에 쓴 일기다. 큰 애가 9살, 작은 애가 5살이었나보다. 일상을 적은 일기는 없어도 책읽어준 독서일기는 띄엄띄엄 남아있다. 이런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애틋한데.......꼭 자몽이나 오미자 처럼 어딘가에서 쓴 맛이 아련하게 올라온다. 왜일까?
그림책은 평생 3번 읽는다고 한다. 내가 어린이일 때 한 번, 자녀가 어릴 때 한 번, 손자가 생겼을 때 또 한 번. 나 어릴 때는 그림책이라고 할 만한게 많지 않았다. 오히려 성인이 되어서 90년대 후반 부터 그림책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이후 지금까지 평생에 걸쳐 그림책을 읽어오고 있다. 두 아들이 커가면서 관심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림책을 읽고 감동을 받고 소장하고 싶어한다. 앞으로 얼마나, 어떤 그림책을 읽을까. 손주가 생기면 그때는 어떤 작가의 어떤 그림책을 찾고 있으려나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