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경하고 바쁜 아버지, 곧 출산이 임박한 육아와 살림에 지친 어머니. 두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여름 몇 달간 네 자녀 중 한 아이를 먼 친척에게 맡기기로 한다.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는 다른 집에 ‘맡겨진 소녀’가 그 곳에서 지낸 이야기를 섬세하고 정갈한 묘사로 그린 소설이다.
작가는 어린 아이의 마음과, 맡겨진 아이를 돌보는 킨셀라 부부의 일상을 간결하면서 아름다운 정경으로 우리 눈앞에 담담하게 그려놓는다. 아이의 시선에서 현재시제로 펼쳐진 문장은 그 자체로 서정적인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실제로 영화로 제작되었고)
원가정에서 부족한 돌봄(혹은 폭력)을 받던 소녀가 맡겨진 곳에서 자신을 존중해주는 어른들과 함께 평온한 날들을 보내는 과정을 읽으며 나도 치유되는 것 같았다. 농가의 일상이나 첫날 밤 매트리스의 진실, 킨셀라 부부의 슬픔 이이야기도 잔잔하고 깊은 여운을 남겼다.
여름이 끝나고 소녀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채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자신을 데려다 주고 돌아가는 킨셀라 아저씨에게 달려가 그를 꼭 끌어안는 장면은 이야기의 다음을 여러 가지로 상상하게 된다. ‘아빠’라고 그를 향해 불렀다는 마지막 문장의 ‘아빠’가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하자 가슴이 먹먹했다.
이름도 나오지 않는 소녀가 자신이 떠났던 동안 ‘더 마르고 말이 없어진’ 언니들과 남동생들이 있는 집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부디 그 몇 달 간의 기억으로 이제 시작될 긴 시간을 견뎌 내면 좋겠다.